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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 미술살롱] 안견과 한국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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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23 22:31:03 수정 : 2014-05-30 17: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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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의 몽유도원도 당시 ‘몽도원도’ 불려
덴리대에 소장한 日 제목 바꾼 의혹 짙어
미술학계 연구 부재 이 기회에 바로잡아야
최근 몇 년 새 갤러리와 카페 등이 인사동에서 삼청동, 옥인동, 부암동 쪽으로 번져 나가고 있는 추세다. 서울의 문화거리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경복궁의 지근거리인 옥인동과 부암동은 조선전기 문화인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그 중심엔 안평대군이 있었다.

옥인동 수송동계곡엔 안평대군의 저택과 비해당 별당이 있던 곳이다. 바로 지금은 철거된 옥인아파트 자리다. 부암동엔 안평대군이 은거했던 무계정사터도 남아 있다. 안평은 고려 때부터 내려오는 중국의 서화류를 많이 소장하고 있던 인물이다. 그 소장품은 내로라하는 문사들을 불러 모았고, 자연스럽게 안평의 저택은 시서화를 즐기는 공간이 됐다. 분명 안평은 문사들과 새로운 문화를 꿈꿨을 것이다. 그런 흔적들은 안평이 세조에 죽임을 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강화에서 처형당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묘소조차 없다. 일설에는 태워져 산야에 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록이 없어 신빙성은 없지만 수목장을 했다는 얘기다.

역사화에 천착하고 있는 화가 서용선은 요즘 단종과 더불어 안평대군에 주목하고 있는 작가다. 안평을 위해 ‘몽유도원도’를 그려주었던 안견의 생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하지만 참고할 자료가 많지 않다. 계유정난이라는 엄청난 혁명적 사건을 거치면서도 안평과 가까이 지낸 안견의 무사함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안견에 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라 야사 형태로 전해지는 이야기만이 떠돌 뿐이다.

안견보다 200년 후의 인물인 윤휴의 ‘백호전서’ 속의 내용이 그 예다. 안견이 계유정난의 낌새를 알아채고 안평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어느날 안평이 안견을 급히 불러 북경에서 구입한 용매먹(龍煤墨丸)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안평이 잠시 자리를 뜬 사이 그는 일부러 용매먹을 옷소매에 감췄다. 자리에 돌아온 안평은 용매먹이 간 곳 없자 계집종을 다그쳤다. 안견은 스스로 일어나 옷소매 속에서 용매먹을 떨구었다. 안평은 노하여 안견을 꾸짖고 내쫓았다. 안견은 집에 돌아가 숨어서 스스로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유정난이 벌어졌고 안평 집에 드나들던 이들은 죽임을 당했다. 안견이 그림만 잘 그린 것이 아니라 세류도 잘 읽고 있었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이 흘러 구전된 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여져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분명한 것은 안평이 안견을 아꼈고 당시 몰려든 문사들과 새로운 문화를 꿈꿨다는 사실이다. 서울의 문화지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옥인동과 부암동의 안평 자취들을 복원하는 일은 서울의 문화자산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아연해야 할 일은 안평 당시 학자들인 박팽년, 이현노, 서거정, 신숙주 등이 자신들의 글에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로 알려진 안견의 그림을 모두가 ‘몽도원도’(夢桃源圖)로 적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제목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미술 사학자들의 사료 연구가 요구되는 이유다.

일본의 덴리대에 소장돼 있는 안견의 작품에 ‘몽도원도’가 아닌 ‘몽유도원도’라 제목이 붙여진 것은 정황상 일본 쪽에서 그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몽유도원도’라고 쓰여진 부분이 중국산 서화 창작용 비단인 ‘소릉(素綾)’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쓰였던 재료다. 안견과 안평 당시에 쓰였던 재료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기본 사료 연구 부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포럼 성격의 한 강연회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상황은 한국 미술사학계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다. 강연자가 원문 확인도 없이 다른 사람이 잘못 인용한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한 청중에게 따끔하게 지적을 받은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한 중견 미술사학자의 고백이다. 과학만 기초연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술사 연구에서 기본이 되는 사료연구도 활성화돼야 한다. 공부하는 미술사학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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