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포기·개방 유도 기회로 삼아야 지난 26, 27일 양일간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서울을 방문했다. 6월 말로 예정된 시진핑 국가주석의 우리나라 방문 일정과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서였다. 왕이 부장은 서울에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골격을 거듭 이야기했다.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되 대화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 언론의 관심을 끈 말도 한마디 했다. 그것은 중국이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한국을 더욱 긴밀한 협력 동반자로 선택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방한했을 때 했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는 말과 오버랩되면서 미·중관계 속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관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위협과 기회의 요인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은 한·미·일 연합훈련과 군사정보교류 및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시 주석은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에서 “안보를 비롯한 아시아인의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으르렁대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가 어려워질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우리는 지난 정부들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경험했다. 박근혜정부는 지금까지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비교적 잘 관리해 오고 있다. 그 결과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우리 외교의 최대 과제인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키고, 북한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유도해야 한다. 한·중관계는 그것 자체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무역상대국이고 지난해에만 600억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또한 한·중관계는 남북관계의 지렛대로도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에게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적 지원과 북·중교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정진영 경희대교수·국제학 |
한·중 간의 경제적, 문화적, 인적 교류가 크게 증대하면서 중국의 일부 학자 사이에 북한 포기론이 언급되곤 한다. 중국이 북한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 의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붕괴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장성택 처형, 지속적인 경제난 등도 중국인의 이러한 대북 입장 변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인들의 한국 드라마나 상품에 대한 선호가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인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키고 있다. 동아시아 질서재편을 두고 미·일동맹과 마주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과의 우호 관계가 전략적으로 절실히 필요하기도 하다.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김정은을 만나기도 전에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려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변화 때문이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우리가 먼저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의 국익을 좇아 미·중과의 관계를 모두 발전시켜 나갈 수 있고, 그래야 ‘통일대박’도 실현할 수 있다.
정진영 경희대교수·국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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