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IL 대응 협력 약속하면서도 “미군 파견 계획 없다” 물러서 이라크 내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미국으로선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에 이어 수도 바그다드까지 넘보는 이라크 과격 무장단체가 눈엣가시이지만 당장 군사개입을 단행하기에는 국내외 정치적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방관하기엔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에 대한 비판 여론과 요동칠 국제유가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이슬람 수니파 계열 과격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는 10일 모술, 11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고향인 티크리트에 이어 12일 바그다드에서 90㎞ 떨어진 둘루이야 마을까지 진격했다. 안바르(주도 라마디)·니네바(주도 모술)·살라헤딘(주도 티그리트) 등 이라크 서부 3개주(중앙정부 관할구역의 30%)가 순식간에 ISIL에 넘어간 데 이어 수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부 무함마드 알아드나니 ISIL 대변인은 “우리는 바그다드까지 진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문제는 2011년 12월 미군의 이라크 철군 이후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이라크 정부군이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ISIL이 공격해오자마자 정부군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고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시아파인 누리 카말 알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정부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이날 알말리키 총리가 요청한 비상사태 선포를 위한 의회 동의안은 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 또 알말리키 정부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계속해 미국에 ISIL의 서부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요청했다고 NYT는 전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까진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기피하는 빛이 역력하다. 미국은 ISIL의 공세를 “중동 전체의 안전을 해치는 위협요소”라고 규정, 다양한 이라크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공습 등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자칫 3차 이라크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외신은 오바마 행정부가 공습보다는 이라크 자체의 군사력을 보강하는 지원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라크 철군 후 지금까지 이라크에 수십대의 F-16 전투기와 공격용 헬기인 아파치 및 수백기의 헬파이어미사일 등의 무기 제공과 군사훈련 등 140억달러(약 14조원)어치 군사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 상황을 초래했다는 ‘원죄’를 가진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것도 국내외의 반발을 살 것으로 예상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이번 이라크 사태는)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완전한 실패라는 분명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미국 외교전문 포린폴리시는 이날 “미국의 군사개입이 불가피하다”며 “ISIL이 수니파 지역의 유일한 군사·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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