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수명의 시대’가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면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몇 년 후면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에,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고혈압, 당뇨, 심장병을 비롯해 치매와 파킨슨병, 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의 수도 함께 증가한다.
이런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기본적인 영양공급은 물론 해당 질병에 특화된 영양성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을 못 씹거나 음식 삼킴 장애 등이 있는 환자의 경우 정상적인 음식 섭취가 어려워 튜브로 소화기관에 유동식을 공급하고, 장에 문제가 있거나 소회가능이 크게 떨어진 환자들은 정맥으로 영양액을 주입한다.
이 중 구강이나 위장을 통해 공급하는 영양액은 ‘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 역시 특수의료용도식품을 8가지로 나눠 관리하고 있으나 제조, 유통, 투여, 보험적용 등 관리체제에 문제점이 있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 분야의 산업은 수요 증가와 함께 식품 소재가 개발되면서 식품과 의료가 결합된 새로운 융복합 식품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해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식품안전연구원은 17일 특수의료용도식품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 3명을 초청해 ‘100세 시대, 특수의료용도식품의 현황과 안전관리’를 주제로 미디어 워크숍을 가졌다.
◆ 환자 영양공급에 필수적…선진국에서는 약제와 식품 중간단계로 철저히 관리
환자의 치료에서 적절한 영양공급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상적으로 음식섭취를 할 수 없는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은 혈관을 이용한 정맥영양(parenteal nutrition)과 자신의 소화기관을 이용하여 경구나 경관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경장영양(enteral nutrition)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장영양에 사용하는 영양액(enteral formula)을 특수의료용도식품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특수의료용도식품은 면역기능이 불완전하고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공급하는 식품으로 철저한 관리가 요구되는 식품이다. 영양상태가 불량하거나 향후 병의 진행과 치료과정에서 영양불량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처음으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경장영양이다.
박유경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교수(의학영양학)는 “영양불량 암환자에게 일반교육을 하거나, 일반교육과 영양상담을 함께 실시했을 때의 환자의 사망률과 삶의 질에 대한 결과를 살펴본 결과 정서기능, 식욕저하, 전체적인 삶의 질 등이 개선됐다”며 “암환자에게 충분한 영양교육은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연구 보고에 따르면 병원에서의 다양한 영양 공급을 제공하고 퇴원 후 영양공급을 지속했을 때 환자의 사망률 감소, 체중증가, 기능 개선이 확인됐다”며 “충분한 비용 효과를 보이는 만큼 퇴원 후 병원의 지침에 따른 지속적인 영양공급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수의료용식품은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고 질환의 치료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의사의 감독 하에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특수의료용도식품을 의료용 식품(Medical food), 유럽과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특수의료용 식이요법 식품(Dietary foods for special medical purposes)으로 분류해 식품의 제조공정과 관리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품과 약제 중간단계의 관리를 받고 의사의 처방에 의한 보험적용을 하고 있다.
서정민 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소아외과· 영양집중지원팀장)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식품의 제조공정과 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법제화했을 뿐 아니라 보험적용을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관리가 부재한 것이 현실”이라며 “관리체계를 개선해 질환에 따른 다양한 제품을 안전하게 생산하고, 의사의 관리 하에 적극적인 경장영양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미흡한 특수의료용도식품의 관리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의사의 지시와 영양사의 감독 하에 사용하도록 규제 ▲다양한 제품의 생산과 수입을 위한 분류의 단순화 ▲GMP(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수준의 위생관리 강화 ▲별도의 첨가물 기준 마련 등 네 가지 사항을 개선책으로 제안했다.
◆ 새로운 융복합 산업 가능성…법규 정비와 정부 지원책 절실
특수의료용도 식품을 제조하는 업계에서도 법규 정비와 정부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환자의 위장관 기능을 가능한 한 보호하고 심리적, 신체적 안정을 주는 효과와 경제적 이점을 중시해 정맥영양제보다는 경장영양제를 3:7의 비율로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적용 문제, 병원에서의 선호도 등의 문제로 아직도 정맥영양제를 6:4의 비율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약품 경장영양제는 식품 경장영양제와 유사한 구성 원료와 제형, 용도를 가지고 있고 오히려 질환 특화된 영양성분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적용 혜택을 받고 있다.
반면 특수의료용도 식품인 경장영양제 식품은 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있는데다 단가도 의약품 경장영양제의 반 정도로 책정돼 제조, 유통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따라서 제품개발을 통한 수출 전략 등에서 크게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규환 대상 중앙연구소 부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적 조제식인 ‘경장영양제 식품’이 식품공전상에 ‘특수의료용도 등 식품‘으로 분류돼 있으나 별도로 ’경장영양제 의약품‘이 있는 관계로 건강보험에서의 적용 혜택과 환자의 부담금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특수의료용도식품의 유통가격은 과도한 가격경쟁으로 하락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는 손실을 감수하고 있으며 소매유통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특수의료용도식품 자체도 국내 승인 의약품 경장영양액에 비해 다양하기는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품 구색이나 임상 연구결과, 임상에 근거한 제품의 개발 등의 면에서 보면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이 부장은 “경장영양제 의약품과 식품의 통합된 법제화 또는 건강보험 관련 법규 개정 등을 통해 특수의료용도식품도 의약품과 동일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제도적으로 산·학·의·연이 전문식, 고령친화식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식품과 의학의 새로운 융복합 산업 활성화로 창조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헬스팀 이새하 기자 lish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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