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달 15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사설을 통해 판결을 비판했다.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8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일본이 공여했고, 한국 측은 개인의 미지급 임금 등도 포함하는 대일청구권을 포기했다”는 게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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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05년 공개한 한일협정문서. 세계일보 자료사진 |
◆피해자 구제 인식차 커지는 한국과 일본
일본 전후보상 네트워크 아리미쓰 겐 대표는 양국 사법부의 판단이 피해자 구제에 대한 한·일 간 충돌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강제한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 서울고법 판결의 근거가 됐던 2012년 8월 대법원의 판결 등을 언급하며 “사법부의 결정이 (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견해 변경을 촉진시키는 현상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사법부에 제기한 배상 요구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아리미쓰 대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전후 보상 재판은 79건이 제기됐고, 한국인 원고가 포함된 것은 39건이었다. 하급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지만, ▲협정으로 해결 완료 ▲국제법상 개인 청구권 없음 ▲시효를 포함한 시간의 벽 등 일본 정부와 기업의 주장을 근거로 패소 판결이 난 사례가 많다. 그는 “(피해자 구제를 둘러싼 양국 간 인식차의 확대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 보상에 대한 의사의 결여 등이 근저에 깔려 있다”며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거나 위안부, 징용공, 피폭자, 문화재 등을 포괄한 종합적인 패키지의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북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이 학살피해, 731부대의 세균전·인체 실험 피해, 독가스·포탄 유기 피해 등을 이유로 일본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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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맺어진 ‘한일협정’의 부속협정인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것을 다루었으나 이후 일제강점기 피해자 보상과 위안부 보상 문제 등의 원인이 되었다. 사진은 수요집회에 참가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도시샤대학 오타 오사무 교수는 “협정으로 피해자 구제는 완료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법에 의한 또 하나의 폭력”으로 규정하며 ‘비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먼저 협정에서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폭력의 책임이 문제된 적이 없었고, 피해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타 교수는 “협정은 일본을 동북아 자본주의 진영의 ‘중심’으로 삼고, 한국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우위를 보여주려 했던 냉전의 논리가 중시됐다”며 “이에 따라 협정은 식민지 지배, 전쟁의 폭력이 은폐된 경제협력으로 처리됐다”고 비판했다. 또 “협정이 국가 권력 간에 정해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한없이 경시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협상 당시) 보상을 요구하는 소리를 냈지만, 한·일 양국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식민지 지배,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불문에 부친 협정 그 자체의 폭력성이 추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타 교수는 피해자 구제를 포함한 과거 청산을 위해서는 ▲진실 규명 ▲사법적 처벌을 포함한 책임 추궁 ▲피해자에 대한 사죄 ▲경제적 보상 ▲위령비, 박물관 등을 통한 교육과 법적·제도적 장치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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