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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옹’이 한반도 냉전 녹이고 교류의 씨 뿌리다

입력 : 2014-06-20 20:53:17 수정 : 2014-06-23 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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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총재는 반공, 평화주의자
金주석은 변태적 공산주의자
김일성과 문선명/김동규 지음/교육과학사/1만5000원
김일성과 문선명/김동규 지음/교육과학사/1만5000원


1991년 12월6일 북한 평양의 김일석 주석 공관. 김 주석과의 단독회동을 마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가 부인 한학자 총재, 그리고 김 주석과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들의 만남은 6·25전쟁 이후 한반도를 뒤덮은 냉전의 얼음을 녹이고, 남북 간 교류·협력의 씨앗을 뿌린 일대 사건이었다.

애초 김 주석은 단독회동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평양 만수대의사당을 방문한 문 총재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곧 망한다”고 열변을 토하자 생각을 바꿨다. 훗날 김 주석은 측근들한테 “그렇게 배짱이 두둑한 인물은 처음 봤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김 주석이 79세, 문 총재는 71세였다. 그해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0세기를 만든 인물 1000명’을 뽑으며 한국인 중에선 이승만 대통령, 김 주석, 그리고 문 총재 3인만 선정했다.

책은 20세기 중반부터 서로 팽팽한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온 김 주석과 문 총재를 치열하게 대비시킨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김 주석은 “변태적 공산주의자”, 문 총재는 “철저한 반공,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둘 사이엔 공통점이 아주 많았고, 1991년의 회동에서 보듯 의기투합한 적도 있다. 저자가 붙인 ‘적과 동지, 극과 극의 접점과 분기점’이란 부제가 절묘하다.

저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평안도의 개신교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 주석은 평남 대동군, 문 총재는 평북 정주시가 고향이다. 김 주석의 생모 강반석은 성경의 베드로를 뜻하는 반석(盤石)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실한 개신교 장로였다. 문 총재 역시 작은할아버지 문윤국 목사한테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이처럼 개신교 영향이 두드러진 환경에서 자랐으면서도 한 명은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로, 다른 한 명은 특정 종파를 넘어선 평화주의자로 성장한 점이 흥미롭다.

1991년 12월6일 평양에서 만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왼쪽)와 김일성 북한 주석이 서로 뜨겁게 끌어안고 있다. 김 주석보다 여덟 살 어린 문 총재는 서슴없이 “형님”이라고 불렀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 주석이 한반도 공산화를 꿈꿨다면, 문 총재는 지구상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는 게 목표였다. 둘 다 ‘통일’을 말했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전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김 주석은 무작정 ‘무력’만 키운 반면 종교인이자 사상가였던 문 총재는 끝까지 ‘평화’에 호소했다. 둘이 1991년 만나 합의한 내용 중에는 ‘금강산 개발’과 ‘남북 문화예술 교류’가 들어 있다. 정치와 군사 대신 경제와 문화로 북한을 변화시키려 했던 문 총재의 강력한 요청이 이끌어낸 성과다.

회동 후 불과 3년 만인 1994년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두 사람은 영영 만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김정일, 김정은 체제를 거치며 더욱 폐쇄적이고 왜소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책은 김 주석이 아들 김정일에게 “내가 죽은 뒤 남북 사이에 의논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문 총재를 찾아라”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일화도 소개한다. 하지만 김정일은 이를 거부했고, 그 때문인지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망령이 서성대고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다. 고대 북한학과장과 인문대학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통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평생의 염원인 통일을 보지 못하고 2012년 성화(聖化·별세)한 문 총재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그래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문 총재의) 숨은 힘과 선도적인 사상, 일념의 조국애, 그리고 세계적인 평화활동은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하여 반드시 올바른 평가로 기록되어질 것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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