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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월드컵과 한·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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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22 21:46:10 수정 : 2014-06-22 21: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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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월드컵 축제가 시작됐다. 축구팬들은 새벽마다 뜬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느라 연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월드컵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월드컵 출전 1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응답자의 38%, 일본 응답자의 40%가 서로 상대국이 가장 졸전을 펼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뿐 아니라 축구에서도 한·일 간 뿌리 깊은 반감이 재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려스러운 조사 결과다.

나는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일 양국 국민이 1997년 11월의 감동을 기억하기 바란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온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습을 갓 뗀 사회부 경찰출입기자였던 나는 사회부 캡(사건팀장)의 지시에 따라 잠실경기장으로 출동했다. 축구 경기 취재가 아니라 운동장 주변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한·일 서포터스 간의 불상사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그해 9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1차전에서 일본에 2-1로 역전승을 거둔 덕분에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상태였다. 일본은 2차전에서 한국을 반드시 잡아야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프랑스행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8만5000여명의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일본축구대표팀 서포터스 ‘울트라 니폰’도 8000명 이상 일본에서 날아왔다. 한·일 양국에서 700여명의 취재진이 보도 경쟁을 벌였다.

김동진 정치부 기자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일본인 관객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느껴졌다. 양국 언론에서는 과열 응원 경쟁으로 예기치 못한 충돌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경찰은 경기장 주변에 7000여명의 기동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국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가 운집한 스탠드 2층에 대형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Let’s go to France together”(프랑스로 함께 가자). 일본 응원단이 술렁였다. 진한 감동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날 경기는 한국이 0-2로 패했다. 그러나 이기고 지고를 떠나 한·일 양국 응원단 사이에는 묘한 동지애가 싹텄다. 두 나라는 아시아 축구 최대의 라이벌인 동시에 축구 변방인 아시아를 세계에 알려야 하는 동지였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그때 나눈 한·일 간 정서적 교감은 많은 결실을 낳았다. 그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이어졌다. 한국은 일본 문화에 시장을 개방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는 한류 열풍이 불었다. 스포츠가 정치로 오염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된 정치를 정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김동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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