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일본 정부의 검증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보고서는 5명으로 구성된 검증팀이 5차례 회합 후 작성했다. 여기에는 일본의 양심적 학자는 배제되고 ‘위안부는 매춘(賣春)’이라고 주장해온 일본 극우 역사학자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전 니혼(日本)대 교수만 포함됐다. 그가 쓴 ‘위안부와 전장(戰場)의 성(性)’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우익의 바이블이다. 검증팀 5명 중 역사학자는 1명이고 나머지는 과거사 문제의 비(非)전문가다. 가장 연장자이자 우익의 권위자인 하타 전 교수가 고작 5번 회합한 끝에 우익 사관이 투영된 결론을 급조해낸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선수가 본인이 하는 경기의 주심을 본 격”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타 전 교수와 반대 입장에 선 양심적 역사학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간토(關東)학원대 교수 등이 배제된 이번 검증은 시작부터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②위안부 사실(史實)은 검증에서 배제
이번 검증의 대상은 위안부 문제의 전체적인 역사적 사실 파악이 아니었다. 고노담화의 작성경위와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행 부분만을 검증 대상으로 삼았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위원은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고노담화 검증 관련 긴급전문가 토론회에서 “이번 검증 보고서는 검증 대상을 외교적 교섭으로 제한함으로써 고노담화가 마치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오해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안부 문제 전반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어야 했다”고 밝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날 토론회에서 위안소 일본군의 병참시설이었음을 보여주는 문건 등 중국 지린성(吉林省) 당안관(기록보관소)에서 입수한 위안부 관련 자료 다수를 공개했다.
③한국 측 자료는 검토 안해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와 관련한 한·일 교섭경위를 검증한다고 하면서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나 교섭당사자 등 한국 측은 배제한 채 일본 정부관계자와 일본의 관련 자료만 검토했다. 이는 일방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한 수순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993년 8월 고노담화 발표 시 우리 정부 외교수장이었던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우리 측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진술인 청취와 자료 검토는) 취사 선택해서 보고서 쓰는 사람들이 결정했다”며 “처음부터 결론이 내려져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 측 이야기는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④교묘한 편집으로 진실 왜곡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는 고노담화가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교묘히 왜곡되고 편집됐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우선 검증보고서는 고노담화 작성 당시 이뤄진 위안부 피해자 증언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1993년에는 일본 고위관리가 우리에게 ‘서울에서 위안부 증언 청취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협조해준 데 감사하다. 이 증언을 기초해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했었다”며 “그러나 검증보고서에서는 피해자 증언에 대해 ‘요식적인 행위였고 기분을 달래주기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 평가절하하며 증언 청취에 대한 평가 자체를 포함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검증보고서를) 의도적으로 편집하려 했다는 단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담화 발표를 앞두고 양국이 사전 조율을 했다는 검증보고서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당시 기록과 정황상 그런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일본 아베 내각의 고노담화 검증과 관련, “아베 정부의 신뢰성과 국제적 평판만 상처입게 될 것”이라면서 공식 항의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검증 보고서가 나온 뒤 산케이신문 등 일본 우익 세력은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음에도 한국의 수정요구가 수용돼 고노담화가 작성됐다”는 취지의 악의적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잘못된 결론은 잘못된 검증팀 구성과 대상선택, 검증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남상구 연구위원은 “만약 고노담화 이후의 연구 성과와 자료를 근거로 검증했다면 이번 검증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검증했어야 했던 것은 담화 문안을 둘러싼 외교적 교섭이나 조정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문안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였다”고 강조했다.
고노담화 작성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조세영 전 외교부 동북아국장(현 동서대 특임교수)은 이번 검증에 대해 “현재 진행형인 외교현안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이는 고노담화를 부정하려는 얄팍한 의도”라며 “앞으로 일본과 정상적인 외교가 가능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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