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원이 친구시켜 재력가 살해…검거되자 "자살하라"
서울 강서경찰서는 29일 채무관계에 있는 수천억원대의 재력가 송모(67)씨를 살해하도록 사주한 혐의(살인교사)로 김 의원과 김 의원의 사주를 받아 송씨를 살해한 팽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살인과 범죄 은폐 시도는 치밀했다. 김 의원은 2012년 말 팽씨에게 “빚 독촉 때문에 힘들다”며 “내가 돈을 빌린 사람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피해자는 수천억원대의 재력가인 송씨. 김 의원은 2010∼2011년 여러 차례에 걸쳐 송씨에게서 5억여원을 빌렸다. 송씨는 6·4 지방선거 재선을 준비하던 김 의원에게 돈을 갚으라는 독촉과 함께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압박했다.
궁지에 몰린 김 의원은 7000만원을 빌려줬던 팽씨에게 “채무를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살인을 제의했고, 팽씨는 이를 수락했다. 팽씨가 살인을 수락한 데는 김 의원에 대한 ‘우정’도 한몫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팽씨가 평소 김의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신뢰해 김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송씨의 출퇴근 시간 등 동선을 파악한 뒤 범행 장소와 시간, 도주 경로 등을 팽씨에게 치밀하게 알려줬다. 팽씨는 2012년 말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넘게 수십차례에 걸쳐 범행현장을 답사했는데, 현장에 갈 때면 늘 택시를 두번 갈아탄 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길을 찾아 멀리 돌아 걸었다. 이것 역시 김 의원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인 예행연습’을 했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경찰은 “(김 의원과 팽씨가) 범행 모의 후 실행까지 1년이 넘게 걸렸는데, 팽씨가 용기가 없어서 시도를 못했던 것”이라며 “김 의원이 재촉하면 범행장소까지 가기는 했는데, 시도는 못했다. 그게 50∼60차례”라고 전했다.
6·4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3월 기다리다 지친 김 의원은 팽씨에게 “오늘이 마지막이다. 더는 못 기다린다”고 최후통첩을 했고, 팽씨는 이 같은 강요에 따라 3월 3일 다시 강서구 내발산동의 송 씨 소유 건물을 찾았다. 팽씨는 한밤중인 0시40분쯤 송씨와의 격투 끝에 둔기로 송씨의 머리 등을 수십차례 내리쳐 절명케 한 뒤 다시 CCTV를 피해 걸어 현장을 벗어난 뒤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4차례에 걸쳐 택시를 갈아탄 뒤 그는 인천의 한 사우나 근처에 도착, 혈흔이 묻은 옷을 갈아입고 인근 야산에 가서 범행에 사용한 도구와 옷가지 등을 불태워 증거를 없애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김 의원은 범행 후 출국하는 팽씨를 데려다주면서도 인천공항까지 가지 않고 근처에서 내려주는 치밀함을 보였다.
강서구 재력가 송모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팽모(가운데)씨가 중국에서 체포된 후 24일 국내로 압송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
그러나 완전범죄는 없었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통해 팽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중국 공안과 공조 끝에 중국에서 지난달 팽씨를 붙잡았다. 김 의원은 팽씨가 중국 구치소에서 전화로 체포 사실을 알리자 “네가 한국에 들어오면 난 끝이다. 네 가족들은 내가 책임질 테니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팽씨는 실제 구치소에서 몇차례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사이 김 의원은 6·4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경찰은 팽씨와 김 의원의 통화기록, 송씨 사무실에서 발견된 김 의원 명의의 5억여원짜리 차용증, 팽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김 의원을 살인교사 피의자로 특정하고 팽씨가 국내에 압송된 지난 24일 그를 체포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송씨에게서 돈을 빌리지 않았다. 중국 구치소에 있는 팽씨와 전화통화를 했지만 팽씨가 송씨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뿐”이라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팽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데다 김 의원의 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발견됐기 때문에 혐의는 충분히 입증됐다”며 “다른 관련자가 있는지 추가 수사 후 이들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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