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특파원리포트] 워싱턴 지한파를 위한 투자

관련이슈 특파원 리포트

입력 : 2014-06-29 21:45:27 수정 : 2014-06-29 21:49: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日 ‘美 싱크탱크’ 돈줄, 한·일간 역사 문제 우호적 기류 만들어
국내 후원 턱없이 적어… 대기업들 중요성 인식, ‘네트워킹 지원’ 다행
세계 정치의 중심, 미국 워싱턴은 총성 없는 전장이다. 세계 175개국 이상이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두고 본국 이익을 위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수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경쟁을 펼치고 있다. 워싱턴 외곽을 휘감는 벨트웨이 내부의 거주자는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로비와 관련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과거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미국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미국 워싱턴으로 번졌다. 일본은 지난 20일 고노담화 검증결과를 발표한 직후 워싱턴을 무대로 대대적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미 외교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외교협회(CFR) 홈페이지에 관련 자료가 바로 올려졌다. 일본 측 입장을 영문으로 자세히 정리한 35쪽짜리 자료였다. 일본 측은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학자들에게 자료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과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법안 통과로 위기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외교만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싱크탱크로 공략 대상을 전환했다고 한다. 올 들어 워싱턴에서는 일본 사사가와(笹川)재단 후원으로 여러 세미나가 열렸다. 워싱턴 싱크탱크들의 돈줄로 불리는 사사가와재단은 최근 미 국가정보국장 출신을 이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싱크탱크는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에 이어 제4부로 통한다. 정부 외곽에서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지만 미국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싱크탱크가 나서 군불을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정가의 현안이 되곤 한다. 싱크탱크는 정부와 의회에 정책뿐만 아니라 인재 풀까지 제공한다. 싱크탱크에서 일하다 행정부 고위 관료로 들어가고, 퇴임 관료가 싱크탱크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만 놓고 보더라도 1기 행정부에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한 커트 캠벨 전 동아태 차관보는 싱크탱크 아스펜 전략그룹, 대북제재를 진두지휘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출신이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민주당, 헤리티지재단은 공화당과 유대감이 깊다 보니 정권 교체 때마다 인재 풀 소스가 뒤바뀌는 재미있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워싱턴 싱크탱크들을 후원하면서 미국 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건 물론이고 일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쌓아 왔다. 모 싱크탱크 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인사는 “싱크탱크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태평양전쟁 때 서로 싸운 일본을 한국보다 더 신뢰하는 게 느껴진다”면서 “일본이 그만큼 정성을 쏟은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가 세운 사사가와재단은 싱크탱크의 일본 연구에 연간 350만달러를 지원한다. 일본재단도 매년 600만달러를 쏟아붓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재단은 또 우드로윌슨센터, 브루킹스연구소, CSIS 등 싱크탱크 내 일본 전공 주니어연구원을 일본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올 상반기에만 100여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국제교류재단이 나서 싱크탱크 내 한국 연구기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교류재단이 싱크탱크에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연간 15억원 내외로, 일본에 비해 턱없이 적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아시아 전문가는 “일본의 대미 영향력이 감소하고 한국 로비력이 강화됐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워싱턴 기류는 여전히 한국보다 일본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요즘 국내 대기업들이 대미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제교류재단과 손잡고 있어 다행이다. SK그룹이 브루킹스연구소에 ‘코리아 체어’(한국석좌)를 만든 데 이어 조만간 현대자동차그룹과 국제교류재단 매칭펀드로 우드로윌슨센터에도 코리아 체어가 개설된다. 우리가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워싱턴 지한파 만들기는 우리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투자다.

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손예진 '순백의 여신'
  • 손예진 '순백의 여신'
  • 이채연 '깜찍하게'
  • 나띠 ‘청순&섹시’
  • 김하늘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