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누워서 뱉은 침이 어디로 가랴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입력 : 2014-07-03 20:54:28 수정 : 2014-07-03 22:37:4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과거사 왜곡하는 日 고노담화 검증에 따질 건 분명히 따지되
동북아 정세 직시하며 국익 앞세워 접근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꿈’을 말했다. 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에 앞서 중국중앙방송(CCTV)이 보도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꿈과 한국의 꿈이 한데 어우러져서 동북아의 꿈으로 더 크게 됐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이다. 시 국가주석은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고 했다. 한·중 간 밀월 무드를 체감케 하는 말의 성찬이다.

‘고노담화 검증’으로 비판을 자초한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은 딴판이다. 밀월 무드가 달갑지 않은 기색이 역력하다. 외무성 대변인은 박 대통령 인터뷰에 대해 ‘유감’이라고 했다. “이번 검토(검증) 경위나 검토 결과를 냉정하게 봐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이 “피해자분들에게 마음의 큰 상처를 주는 일이고, 국가 간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고, 국제사회의 준엄한 목소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한 것이 목에 걸린 가시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아베 총리와 그 추종 세력이 유난스럽게 구는 정치심리적 배경은 뻔하다. 극우 포퓰리즘이다. 집단적 자기기만에 앞장서는 부류를 질타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자기편이 저지른 잔혹 행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아베 정부의 과거사 왜곡 기도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민족주의자’ 자리에 ‘아베 총리와 그 추종 세력’을 대입해 보라. 오웰의 경구는 동북아 지정학의 위기감을 높이는 과거사 갈등의 핵심을 군더더기 없이 약술하는 고발장으로 변한다. 아베 정부는 비극적이다. 이 고발장에서 한 발도 벗어날 수 없다.

위안부 강제 동원 범죄는 세상이 다 아는 자명한 사안이다. 직접 피해자는 한반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만 피해자인 천례화 할머니는 5월 도쿄에서 열린 피해 다큐멘터리 상영행사에 90세 노구를 이끌고 참석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네덜란드의 피해 할머니도 치를 떤다. 그런데도 아베의 일본은 검증을 시도했고, 결과를 발표했다. 누워서 침을 뱉은 것이다.

동북아 지정학이 출렁이고 있다. 한·중이 어제 정상회담을 통해 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고, 북·일도 비상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거의 어지러운 수준이다. 어제의 동지가 내일도 동지로 남을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시점에서 중차대한 것은 대한민국의 전략적 대응 능력이다. 위안부 문제에서부터 잘 풀어나가야 한다. 이성적 대처가, 다시 말해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되 국익 중시의 관점을 지키는 실사구시형 대처가 필수불가결하다.

이승현 논설위원
정부는 최근 내년 광복절 때 ‘위안부 백서’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로 족할 수 없는 측면도 다분히 있지만,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싸움은 승부가 정해져 있다. 거짓이 때론 진실을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진실을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인권 유린 원죄의 상처가 덧날 수밖에 없는 기본 환경을 명심할 일이다. 아베의 일본이 뱉은 침은 제 얼굴에 떨어지게 돼 있다.

일본을 압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해양, 대륙 열강 사이에 낀 대한민국으로선 이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일 관계엔 과거사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과거사 문제가 블랙홀이 된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외교 정상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정서적으로 쉽지 않다. 정치적 부담도 크다. 하지만 동북아 형세를 손금 보듯 읽고 적기에 행동하는 균형감각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라고 했다. 독립선언서를 인용해 각오를 다진 것이다. 그 각오대로 박 대통령부터 소임을 다해야 한다. 말만으로 꿈이 이뤄질 리 없다. 한국의 꿈, 동북아의 꿈을 이루려면 그 무엇보다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앞세우는 정치 리더십이 효율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이승현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손예진 '순백의 여신'
  • 손예진 '순백의 여신'
  • 이채연 '깜찍하게'
  • 나띠 ‘청순&섹시’
  • 김하늘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