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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황색 재앙’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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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18 22:37:13 수정 : 2014-07-21 15: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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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의 인류지배 예언 절반은 틀린말
미디어예술 통해 소통의 미학 표현
비디오아트로 세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백남준(1932∼2006)은 7월20일이 탄생일이다. 때 맞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백남준아트센터가 각각 백남준 아카이브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전을 열고 있다. 소통을 통한 평화세계를 꿈꿨던 한 거장의 진면목을 되새김질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새삼스레 우리는 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984년 1월1일 그가 벌인 기상천외한 ‘위성 예술쇼’다. 미국과 프랑스를 위성으로 연결해 세계 첫 쌍방향 생방송 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보여줬다. 조지 오웰은 1949년 미래원격통신과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 된 암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발표하면서 1984년이 되면 매스미디어가 인류를 지배하리라는 비관적인 예언을 했다. 이른바 ‘빅 브라더’의 등장이다. 백남준은 이 예언에 대해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하며 예술을 통한 매스미디어의 긍정적 사용을 보여주기 위해 위성 텔레비젼쇼를 기획한 것이다.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 존 케이지 등 당대 최고의 전위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오잉고 보잉고와 같은 팝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전 세계에서 250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당시 국내에서도 생중계됐다.

일본, 독일, 미국 등 전 세계를 떠돌며 ‘세계인’으로 살았던 백남준에게 ‘소통’은 인생의 화두가 됐다. 제국주의 지배와 전쟁을 경험한 그에게 소통은 세계평화로 가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인의 소통을 현실화한 셈이다. 소통을 위해 모든 장벽을 부수는 데 골몰했던 백남준은 당시 미디어의 상징이었던 텔레비전을 새로운 에스페란토로 여겼을 정도다.

백남준의 소통의 여정은 계속됐다. 1986년 백남준은 미국과 일본, 한국을 연결하는 ‘바이바이 키플링’을 진행한다. 이는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일 뿐, 이 둘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다’는 영국 시인 키플링의 명제를 깨는 작업이었다.

백남준은 88서울올림픽에선 ‘손에 손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념을 초월해 중국, 러시아와 같은 동구권 국가까지 위성으로 연결하여 전 세계가 텔레비전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백남준은 생전에 소통의 달인으로 통했다. 독일 쾔른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화가 이를 말해준다.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을 지닌 그는 내로라하는 전위 문화계 인사들과 맥주집에서 격의 없이 교류를 했다. 당시 맥주집에 함께 드나들던 인사들은 그를 칭기즈칸에 빗대 ‘황색 재앙’이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백남준 스스로도 ‘황색 재앙’을 자처했다.

사실 역사시대 이후 동서양의 소통을 주도한 세력은 바로 알타이의 유목민들이었다. 멀리 로마제국에서 신라의 경주까지 내달은 사람들이다. 한국인 피의 원형질이다. 백남준도 소통의 유전자를 핏속 깊이 지녔다는 얘기다. 1990년 백남준이 가장 가깝게 지냈던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기 위해 ‘우랄 알타이의 꿈’을 마련한 것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도포 차림의 백남준은 퍼포먼스를 펼치고 무당 12명과 신명나는 굿판을 벌였다.

언어 이전 시대 인간은 신과 직통했다는 얘기가 있다. 언어라는 미디어가 생기면서 소통은 옅어져만 갔다. 매스미디어 시대인 지금에서야 말해서 무엇하랴. 백남준은 미디어로 인한 소통 부재의 시대에 샤먼을 자처했던 것이다.

샤먼은 신과 인간을 직관적으로 연결하는 존재로 신과 인간과의 언어의 중개자며 신어를 전할 수 있는 능력자다. 샤먼은 한국어인 스승과 신라의 화랑과도 상통한다. 한국문화의 근저에 샤머니즘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백남준의 화두인 소통 인자도 그 속에서 자랐다. 몽골반점이 있는 한 예술가가 꾼 새로운 칭기즈칸의 꿈을 다시금 새겨야 하는 이유다. 싸이와 K팝 등 ‘한류 현상’의 파워가 괜한 것이 아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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