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87), 강일출(86) 할머니가 자신들이 겪었던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고령과 지병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언에 나선 것은 생생한 목소리로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들의 증언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인류 문명사의 오점에 대한 기록으로도 남을 것이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재청과 여성가족부,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4월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번 달 추진위원회와 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 지난 18일 국회에서는 등재의 당위성, 추진 전략, 기록물의 성격 등을 다룬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위안부 기록물이 인류 문명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토론회의 주요한 논점 중 하나였다. 이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을 지낸 서울대 서경호 교수는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 점령기의 아픈 기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며 “문명사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 양국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진 기록물이라는 의미다. 광주시 5·18기록관 홍세현 추진기획단장은 ‘찬란한 과거의 기억’을 담은 것 뿐만 아니라 ‘비극적 사건을 담은 기록’이 세계적인 의의를 가진 기록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홍 단장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투올슬랭 학살박물관 기록, 남미 독재정권의 만행 기록,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위안부 기록물은 아픈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을 통해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세계기록유산의 취지에 정확하게 부합한다”며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의 파렴치한 모습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성공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할머니 증언은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힘”…1차 자료 부족은 문제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 추진 작업은 현재 ‘자료 수집’ 정도의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등재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어떤 기록물을 등재 대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위원은 ▲범죄 행위 ▲피해 사실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기록물의 성격을 분류해 제시했다.
범죄행위와 관련된 자료는 ‘위안소 설치 및 운영’, ‘위안부 모집·이송·관리’ 등과 관련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의 군과 외무성, 총독부 등의 문서와 2차 대전 전범재판 자료, 연합국 포로 심문 자료 등이 대상이 된다.
피해 사실 관련 기록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자료 등을 포함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기록, 국제연대 활동 기록, 유엔 산하 기구의 보고서, 각 국 의회 결의안 등은 해결을 위한 노력의 범주로 묶이는 기록물이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일제의 위안소 설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1차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은 등재를 어렵게 할 요소로 꼽혔다. 위안부 동원 사실을 감추기 위해 패전 후 일본 정부와 군이 조직적으로 문서를 폐기했고, 현재는 일본 정부가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 이강수 학예연구관은 “당시 생산한 1차 공문서 발굴 노력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한국에 1차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최근 중국이 관련 기록을 공개하고 있다. 관련 국가에서 발굴된 자료도 가급적 수집,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국은 이미 위안부 관련 기록에 대한 등재 신청을 마쳤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지난해 나눔의 집 1차 자료 3060점을 국가기록원에 등록해 자료의 우수성을 검증받았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료를 증명하는 기초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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