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는 1967년 의암댐 준공 후 북한강 물길이 막히면서 생긴 섬으로 일대가 물에 잠기기 전에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의 충적지대에 자리 잡고 있던 고대 유적지이다. 지금은 섬으로 변해 유원지로 활용돼 왔다. 1977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중도에서 처음 고고학 조사를 실시한 후 1980∼84년 5차례에 걸쳐 정식 발굴해 보고서를 발행했다. 5차례의 발굴을 통해 중도 전체에서 선사시대 주거지, 지석묘, 적석총 등 270여기가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중도 유적은 이른바 ‘중도식토기’라고 하는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 무문토기 등과 철촉 등이 출토됐다. 이 유적은 중도 내 전역에서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고대사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확인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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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고고학 |
중도의 중앙에 위치한 주거지 밀집지역은 집자리가 정면을 모두 동남향으로 향하도록 배치돼 있고 그 질서정연한 배치가 기획도시 같은 느낌이다. 주거지 밀집지역의 중심구역에는 둘레가 404m나 되는 네모난 형태의 방형 환호(環濠)가 발견됐다. 성곽의 해자(垓字)처럼 긴 도랑을 파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짐승이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처럼 보인다. 마치 역사시대 궁성 유적과 같은 인상을 준다. 지금 봐도 대도시이다. 정말로 세계적인 유적이다. 우리가 성금을 보내 나일강댐에 묻힐 위기에서 구해낸 아부심벨보다도 더 소중한 유적인 것이다.
그런데 중도 현장에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현재로서는 보존할 부분은 보존하면서 일부지역에 대한 유적박물관과 야외 유구 전시공간을 만들고 그 외 공간은 레고랜드 테마파크 시설이 예정대로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한다. 중도 유적은 섬 전체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동안의 역사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는 유적지이다. 그것을 어느 부분은 보존하고, 어떤 부분은 유물만 수습해 인멸할 수는 없다. 우리의 잊혀진 고대사는 살아있는 유적이 없이는 절대로 역사를 복원할 수 없다. 이를 보존하지 못하면 ‘문화참사’요 ‘역사참사’다.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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