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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없다는 건 궤변… 전면 책임 물어야”

입력 : 2014-08-04 06:00:00 수정 : 2014-08-04 09: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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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 와타나베 미나 사무국장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고노(河野)담화’가 4일로 발표 2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지난 6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에 의한 담화검증 공세로 신뢰성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으면서 고노담화를 비롯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향후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세계일보는 고노담화 발표 21주년을 맞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분투한 일본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웜·WAM) 와타나베 미나(渡邊美柰)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아베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 의도와 내용을 짚어보고 고노담화 및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자료관 측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글로벌 금융 중심지이자 각종 유엔 기구가 모여 있는 온화한 기후의 스위스 제네바에 자주 간다. 물론 세계 외교의 중심지인 미국도 간다. 국제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호소하고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지난해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제네바에 있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에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의 ‘위안부 망언’이 거론됐다고 알려왔다. “위안부는 당시 필요했다”는 하시모토의 망언이 유엔에서 공식 비판받았다는 소식은 이렇게 세계로 타전됐다.

1년의 시간이 흐른 지난 1일, 도쿄 와세다대 근처에 자리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웜)에서 그와 50㎝ 정도를 두고 대면했다. 와타나베 미나 웜 사무국장. 그는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지만 한국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다”며 “책임감으로,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일본 명예를 훼손한다’고 격하게 비난받는다. 우익의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자 “(일본 여성운동가인) 고(故) 마쓰이 야요리(松井やより)는 일시적으로 몸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협박을 받기도 했다”며 “외곬으로 생각하는(‘오모이쓰메루’) 사람이 있을까 무섭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가끔 착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료를 보여주고 자료관 내 주요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친절함도 잊지 않았다. 나이를 묻자 “나이를 쓰지 않는 새 전통을 만들자”고 제안한 그는 자신의 생일이 고노담화가 발표된 8월4일이라고 귀띔했다.

폭염으로 숨이 턱밑까지 올라오던 지난 1일 오후 도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에서 만난 와타나베 미나 사무국장이 자료관에 전시된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고노담화 발표 이후 무려 529점의 자료가 새로 발견됐다”며 담화 내용의 강화를 촉구했다.

―지난 6월 공개된 아베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의 의도와 배경, 내용과 결과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검증 내용이) 모순돼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노담화를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긍정적이지만, 소위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 것은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1993년 시점에선 ‘바타비아 재판’ 자료(제2차 세계대전 중 인도네시아 포로수용소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한 내용)를 포함해 군이 여성들의 의사에 반해 끌고 갔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지만 이를 포함하지 않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1992년 한국 위안부 피해자 16명을 인터뷰했음에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일본의 진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건 피해자에 대한 대단한 결례이다.”

―고노담화 검증 이후 앞으로 대응 방향은.


“지난달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B규약 인권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의 검증 포인트에 대해 말했는데, 조사결과 정부 자료에 의해 소위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일관되게 피력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했다’는 표현과 소위 ‘강제연행’이라는 말의 차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B규약 인권위원들의 코멘트였다. 다양한 거짓말에 속아 위안소로 간 경우도 많이 있고, 실제로 점령지인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선, 아베 총리가 말하는 ‘협의의 강제연행’인, 집에서 군인들에 의해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일본군이 ‘집에서 끌고오라’는 명령서를 만들 이유도 없고 자료가 남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강제연행을 보여주는 정부자료가 없다’는 주장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 고노담화를 보강하는 것은 당연하고 소위 ‘강제연행’에 대한 모순을 증명하는 것과 함께 일본군이 전면 책임이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연행’이 없었다는 것을 통해 마치 위안부에 대한 전체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강제연행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국제사회에 설명할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도 그것을 꼭 요구해줬으면 좋겠다.”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기여를 감안, 미흡하지만 고노담화에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의견도 있는데.

“(고노담화가) 그 정도로 대단하진 않다. 고노담화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 이후 2년간 만들어진 것으로, 1993년 발표 당시부터 위안부 규모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등 부족하다고 지적됐다. 발표 이후 21년이 흘러 시민과 연구자들이 자료를 연구하고 있고, 피해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어 고노담화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노담화 공표 이후 무려 529점의 자료가 새로 발견됐다(그러면서 그는 책상 위에 쌓인 자료를 가리켰다).”

―위안부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웜은 공간이 115㎡(약 35평)로 협소해 정기전보다 특별전 형식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열고 있다. 한국과 대만, 필리핀에서도 자료관이 만들어져 전시하고 있지만 일본은 가해 측면, 즉 누가 이 시스템을 만들었고 병사들은 어떤 것을 느끼며 위안소에 갔는지 여부를 모든 전시에 반드시 넣고 있다. 피해자와 함께 가해자를 전달하는 게 우리 전시의 기본 방침이다. 아울러 피해자의 경우 위안부 피해를 받기 전의 즐거운 생활이나 그 후 인생도 중요하게 다룬다.”

―2005년 자료관 오픈 이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텐데.

“자료관 운영은 항상 힘들었다. 위안부 피해자가 할머니가 돼 이곳을 방문해 ‘이것보다 좋은 사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에 깊고, 자신의 사진을 보고 즐거워할 때 보람을 느낀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8월14일을 ‘유엔 위안부 기념일’로 하자는 운동도 펴고 있는데.

“유엔 기념일로 하기 위해선 유엔 총회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일본 정부가 일본에 반대하지 않도록 외교를 잘하는 한편 많은 나라가 위안부나 여성폭력 문제를 크게 다루지 않고 경제문제를 중요시하고 있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는가) 미군 위안부 문제가 제기될지도 모른다(웃음). (야스쿠니 참배 등 우익행보를 거듭하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행정개혁상이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을 보라. 여성이라고 모두 오케이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힐러리는 여성 폭력에 대해 관심이 높지만, 그 역시 정치인이다.”

―위안부 문제에 흥미를 갖거나 위안부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이것이다’ 하는 것은 딱히 없다. 여성운동가 마쓰이에 의해 이른바 ‘아시아여성자료센터’가 만들어질 때 여성운동에 참가하면서 위안부 문제도 관여하게 됐다. 1990년대 충격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였고, 위안부 피해자가 일본에 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여해온 것 같다. 위안부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여성법정’부터였다.”

―20년 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해온 힘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보다 ‘책임을 다하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다. 한국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나는 한국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많은 분들이 작고했지만, 위안부 피해를 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활동하고 있다(실제 웜 입구에는 위안부였음을 고백한 세계 150명의 할머니들 사진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피해 사실이 있고, 그것을 인정받고 사죄받아 존엄을 회복하고자 하는 위안부 피해자가 있고, 그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가 있기 때문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초기에 관여한 한국 여성들이나 필리핀 여성들도 그렇고, 1990년대 발칸 전쟁 중에 발생한 성폭력 문제로 세계인권대회나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다뤄지는 등 위안부 문제는 당초 국제적인 연대행동으로 시작됐다. 나는 국제사회가 있더라도 일본이, 일본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고, 일본인이 사실을 정확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국제파’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민주당이 2009년 집권하고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일본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나 한국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없는가.

“내가 감히 한국에 말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정부에 대해선) 최근 한국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의 주한 미군기지 위안부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박근혜정부가 그 사실을 확인해 피해자 보상 등 신속히 처리한다면 일본 정부에 엄청난 압력이 될 것이다. 일본 내에선 ‘왜 일본만이’라는 (자조적인) 소리가 자주 나오지만, 일본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사실을 확실히 인정하고 사과하며 국가 재정으로 보상하고 이 사실을 다음 세대에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다.”

도쿄=글·사진 김용출 특파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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