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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미국 치료 위해 의사로 왔다”… 새 정신혁명 불 지펴

입력 : 2014-08-06 21:56:06 수정 : 2014-08-07 00: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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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성화 2주년 특별기획-미주대륙을 일깨우다]
(상) 미국, 건국정신으로 돌아가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인 문선명 총재는 생전에 세계평화 중심국으로서의 미국과 식량자원 보고인 남미 대륙의 섭리사적 역할을 강조했다. 문 총재 성화 2주년을 맞아 그가 34년 동안 남북미 대륙에서 펼친 평화와 생명사랑 운동 등 주요 활동을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나는 불이 난 집에 불을 끄러온 소방수입니다. 병들어 있는 미국을 치료하기 위한 의사로 왔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 창시자 문선명 총재가 1970년대 초 세계 최강 미국 국민에게 던진 말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는 흑백 간의 인종 분규, 청소년의 도덕적 타락, 극도의 개인주의 확산, 공산당 문제, 종교 간 갈등이 팽배하고 대낮에도 살인과 강간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문 총재는 미국이 이 문제를 청산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강력히 경고했던 것이다.

◆“미국이 책임 다하지 못해” 호통

정확히 1971년 12월 18일 미국에 입성한 문선명·한학자 총재 내외는 이듬해 1월 8일 세계 청년들을 중심으로 ‘통일십자군’(One World Crusade·국제기동대)을 편성한다.

이 국제기동대는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미국민 각성 운동을 펼칠 핵심 엔진이었다. 문 총재는 먼저 7대 도시 강연회를 알리기 위해 1월 28일자 뉴욕타임스와 데일리뉴스에 파격적인 광고를 실었다. 강연회 일정 외에 10달러가 넘는 유료 공개강연,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었나, 인간의 잘못이었나’를 주제로 한 소설 10만달러 현상공모, ‘새로운 정신적인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동방의 새 기독교 지도자 문선명 선생’이란 연사 소개 내용은 당시 언론의 핫이슈가 됐다.

문 총재는 2월3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강연회에서 신의 실존을 역설했고,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사명을 강조했다. 문 총재는 연설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미국이 시대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꾸짖기도 했다.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원조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나갔으면 미국은 언제나 세계가 추앙하는 국가가 됐을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위주로 돌아서게 될 때 미국은 고립되는 것입니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뉴욕 전역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적절한 연설”이라고 호응하는 편지가 쇄도했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뉴욕의 유명 출판사에서는 출판계약을 요청해 왔다.

워싱턴,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버클리 등 7대 도시 강연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필라델피아 강연회 기간 중에 문 총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대지’의 작가인 펄 벅 여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인종과 인권 등 문제로 1시간30분가량 환담하며 많은 부분에 공감했다.

워싱턴에서는 미 의회 상원의원 9명, 하원의원 8명이 문 총재와 요담했다. 2월 19일자 워싱턴포스트와 이브닝스타는 문 총재와의 인터뷰를 동시에 내보내며 조지워싱턴대학 리즈너 강당 강연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1972년 1월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문선명 총재 미국 주요 도시 순회강연’ 광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문 총재의 힘

문 총재는 미국 도시 순회강연을 통해 기독교정신의 부흥과 미국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의 강연은 많은 언론으로부터 “도덕적 타락으로 가정과 청소년들이 구제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암담한 현실에서 새로운 정신혁명의 봉화를 들어 올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뿐이 아니다. 마약과 술에 절어 사는 미국 히피들의 변신이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문 총재 가르침에 감화돼 ‘무니(Moonie·문 총재 추종자)’가 됐으며, 깔끔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로 문 총재의 활동에 합류하자 놀랐던 것이다.

강연회는 주제를 달리하며 계속됐다. ‘기독교의 위기와 새로운 소망’을 주제로 한 ‘희망의 날 대강연회’가 1973년 10월 1일부터 4개월간 미국 21개 도시에서 개최됐고, 9월 17일부터 12월 23일까지는 미국 8대 도시로 이어졌다. 9월 17일 뉴욕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뉴욕 강연회 전야제에는 미국 저명인사 17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의 유명 영통인이자 예언자인 진 딕슨 여사가 문 총재를 증거해 화제를 모았다.

다음 날인 18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강연회는 3만여 인파가 운집했다. 문 총재는 이날 강연에서 이 시대 기독교가 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강연 인파기록은 연신 경신됐다.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1976년 6월 1일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에는 5만명이 몰렸으며, 그해 9월 18일 워싱턴 모뉴먼트 광장에서 열린 강연회에는 30만명이 운집했다. 미국 종교 역사상 최대 인파였다. 프런티어 정신이 강한 미국인들은 문 총재가 “미국이 세계평화의 중심국가가 돼야 한다”며 미국의 자존심을 다시 일깨워주자 열광했던 것이다.

문 총재에게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미국의 정신적 위기와 사회혼란은 통일운동의 붐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1960년대의 반문화적인 삶에 대해 환멸을 느낀 많은 젊은이가 가정연합과 연결됐다. 양창식 천주평화연합(UPF) 세계회장은 “문 총재님이 미국에서 펼치려했던 뜻은 미국을 건국했던 기독교 정신의 회복이었다”며 “미국 전역을 누비는 순회강연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건국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총재(오른쪽)가 박보희 특별보좌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1976년 6월 1일 미국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대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문 총재는 이날 ‘미국은 하나님의 소망’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미국은 하나님과 하나가 돼야만 선진국가로서 축복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내 목숨 위해 배 버리지 않는다”


미국 전역에서 문 총재가 이끄는 통일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기득권층에서 반발했다. 특히 승공운동과 새 종교 운동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좌익세력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문 총재에게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서 문 총재에게 고작 7300달러(약 730만원)의 세금포탈죄를 씌워 1984년 댄버리 연방교도소에 보냈으나, 결과적으로 문 총재의 진심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기독교의 뜻있는 성직자들이 문 총재 편에 서서 기독교의 연합과 갱신에 나섰던 것이다.

그동안 문 총재가 미국의 도덕 부흥과 공산주의 팽창 저지를 위해 뿌린 막대한 돈을 생각하면, 730만원의 탈세 행위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가정연합 측에 따르면, 문 총재는 단지 신탁관리자의 입장이었고 이자는 교회 재산이기 때문에 납세 의무가 없다고 판단해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법무부 범죄과 탈세범죄 전문가인 랠프 벨터 역시 기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상부에 보고했지만, 길버트 앤드루스 차관보 대리는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기소를 명령했다.

당시 문 총재는 한국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의도적인 탈세였더라도 미국시민이 아닌 만큼 미국에 재입국만 하지 않으면 재판을 받을 의무는 없었다. 미 법무부에서조차 그러한 제안을 타진해왔다. 그러나 문 총재는 단호히 거절하고 재판정에 나섰다. 미국이라는 배를 구하겠다고 선장을 자임한 문 총재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배를 버리고 달아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을 지켜본 미국의 종교 지도자와 수많은 시민이 또다시 감동했으며, 정부의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국교회협의회, 북미침례교회위원회, 북미합동장로교연합, 아프리칸 감리주교회, 기독법률사회, 유니테리언교회연합, 미국시민자유연맹과 뉴욕시민자유연맹 등 40개의 단체와 1억2000만명 이상의 미국 시민의 대표자들이 변론취지서를 제출했다. 미국의 유명한 법학자인 로렌스 트라이브 박사 등 많은 법조인들이 문 총재 변호에 나섰다.

문 총재가 입감된 뒤에도 워싱턴에서는 6000명의 시민이 참가하는 ‘종교 자유를 위한 대회’가 열렸다. 일부 성직자들은 ‘공동고통연대(동고회)’까지 조직해 문 총재와 교도소에서 일주일을 함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 총재가 출감하자 1985년 8월 워싱턴 옴니 쇼어햄 호텔에서 1600명의 성직자와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회가 열렸다. 문 총재를 반대하던 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그의 편으로 돌아선 것은 그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풀렸기 때문이다.

문 총재의 댄버리 고난과 관련, 당시 가정연합 뉴욕교구장이었던 박중현 한반도평화국제협력네트워크 회장은 “문 총재께서는 미국의 종교가 세속화돼 더이상 세상을 구할 수 없게 된것을 개탄하고 부도덕과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는데, 기득권층과 기독교의 배타적 세력들이 문 총재를 단죄해 형극의 길을 걷게 됐다”며 “문총재는 피하지 않고 악의 세력에 맞섬으로써 미국의 종교지도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말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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