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은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우울증은 발병 원인이 규명되진 않았으나,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80% 이상은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똑같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노인이 젊은이보다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훨씬 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자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길 꺼리는 한국인의 특성이 우울증을 키운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주목된다.
사람이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현대 의학은 아직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 뇌 신경전달물질 체계의 이상, 생활 속 스트레스, 아동기에 겪은 극심한 갈등 등이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고 추정할 뿐이다. 우울증은 증상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 대체로 “우울하다”, “만사가 귀찮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건망증이 심해진다”, “사람을 만나기 싫다” 등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치료는 말로 하는 상담을 통해 주로 이뤄지나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찾아주는 약물도 종종 처방한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우울증 치료는 정신치료와 약물치료의 병행이 기본”이라며 “기력 보충을 위해서라며 건강보조식품을 복용하거나 조용한 곳에서 휴식하는 것 등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질병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노인의 우울증은 젊은이와 비교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노인이 평소와 달리 “내 과거는 잘못됐다”, “주변에 죄를 지었다” 등의 말을 자주 한다면 우울증 증세로 봐야 한다. 알코올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것도 우울증 초기 증상이다. 서울북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하라연 과장은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20대보다 5배 이상 높아 노년기 우울증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평소 가족들이 노인의 사소한 감정 변화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초기에 우울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보건소에서 관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우울증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똑같이 우울증에 걸렸을 때 노인은 젊은이보다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훨씬 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이 극단적 선택을 많이 하는 건 서양인과 달리 자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길 꺼리기 때문이란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가 ‘국제임상정신약리학회’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은 국내 우울증 환자 1592명과 미국 우울증 환자 3744명의 진료 내용을 비교·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자살을 고려하고 있거나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인은 6.9%로 집계돼 미국인(3.8%)의 2배 가까이 됐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은 우울증을 치료하러 병원에 와서도 자신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 “내 증상은 별것 아니다”라며 과소평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실제로는 훨씬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어 시급한 치료와 조치가 필요한데도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 교수는 “한국인은 스스로 감정을 억압하고 표현을 잘 안 해 자살 징후가 나타날 정도가 돼야 알아차리고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며 “이게 국내 우울증 환자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단과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감소시키고, 우울증에 보다 신중하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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