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서 28일부터 ‘단색화의 예술전’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 운동은 서양의 미니멀리즘에 비견된다. 서양의 미니멀리즘이 사물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면, 단색화는 몰아지경의 초월적 경지에 이르고자 했다. 흰색, 미색, 검은색, 갈색과 같은 무채색으로 표현되는 매우 절제된 화풍이다. 하지만 그냥 단색만 쓰는 게 아니다. 한 가지 색 같지만 한 가지 색이 아니고 다층색이 뒤섞인 단색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 받고 있는 단색화 흐름을 이끌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단색화를 재조명하는 국제갤러리의 대규모 ‘단색화의 예술’전(28일∼10월19일)은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다.
|
정창섭의 ‘Return’ |
단색화는 1970년대 태동 이후 1980년대 민중미술,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풍미한 시절에도 꺼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한국미술사에서 독창적 사조로 존재해 온 것이다. 어쩌면 모든 색을 담고 있다는 먹색의 ‘수묵전통 유전자’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시에는 1970년대 단색화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기린,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등 7명의 작품이 출품된다. 1970∼80년대에 제작된 초기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국 단색화 운동의 생생한 면모를 보여준다.
|
이우환의 ‘From Point’ |
특히 한국 단색화의 요체를 엿보게 해준다. 마치 선(禪)을 수행하듯 행위의 ‘반복’을 통해 종국에는 고도의 정신성을 획득한다. 과정으로서의 단색화의 제작 방식은 물성과 주체, 화폭과 자아의 합일을 이루는 일종의 ‘수행(performance)’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우환의 반복되는 선과 점의 행렬, 박서보의 반복되는 선묘, 정상화의 반복되는 물감의 뜯어내기와 메우기, 윤형근의 반복되는 넓은 색역(色域)의 중첩, 정창섭의 반복되는 한지의 겹침, 하종현의 반복되는 배압(背壓·캔버스 뒷면에서 물감 밀어 넣기)의 행위, 김기린의 반복되는 물감의 분무(噴霧) 행위 등 ‘반복적 행위’는 이들의 작품 속에 고르게 녹아 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전 초빙 큐레이터였던 윤진섭씨가 이번 전시에도 초빙 큐레이터를 맡았다.
|
김기린의 ‘Visible invisible’ |
“한국의 단색화는 ‘국전’으로 대표되는 아카데믹한 미술에 대한 반동으로 비롯되었다. 1970년대의 단색화 혹은 ‘백색파’ 회화는 당시만하더라도 현대미술과 이음동의어로 통했을 정도다.”
이같이 단색화 작가들의 서구 모더니티의 수용과 절충은 국제적 보편주의를 향한 행진의 서곡이었다. 이른바 회화에서의 현대성의 획득되면서 지역적인 한계로부터 벗어나 국제적인 열린 지평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의 단색화가 지닌 회화에 대한 ‘부정의 정신’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평면성이란 서구적 개념에 한국의 정신성을 접목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에 일고 있는 미술시장에서의 단색화 바람은 이 같은 진면목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여진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