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아파트 건설 붐도 주춤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사고 일주일째 되는 날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붕괴된 아파트보다 두 배 높은 46층짜리 초고층 김책공대 교육자 아파트 건설 현장을 방문해 “21세기 공격 속도, 마식령 속도를 창조한 부대는 역시 다르다”며 빠른 진척에 만족스러워했다.
잇단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건설에 북한 지도부가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한국경제연구원(KDI) 홈페지에 올린‘북한의 아파트 건설시장과 도시정치’ 연구 논문에서 북한에서는 아파트 건설을 둘러싼 국가권력과 시장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이 자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에 따르면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이때는 정치적인 목적이 컸다.
1974년 김정일은 제5기 제8차 당중앙위원회전원회의를 통해 당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사실상 후계자로 당내에서 공식화된다. 이를 계기로 김정일은 본격적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유일체제 형성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김정일에게는 후계자로서의 업적 쌓기와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의 확실한 인정이 중요했다. 김일성의 60세 생일(1972년)과 70세 생일(1982년)에 맞춘 대규모 아파트 건설계획이 경제상황과 중장기 경제계획이 가져야 할 합리성과는 상관없이 무리하게 수립돼 진행됐다. 그 일환으로 평양시 꾸리기 운동과 같은 도시미화 사업이 전개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평양에서는 ‘집 다음에 계급투쟁’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부동산 열풍이 지속됐다. 최근에는 부동산 투자로 100만달러 이상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기도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들은 30평대 아파트를 3~4만달러에 분양받아 인테리어를 한 뒤 최고 10만달러에 되팔아 2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 부 연구위원은 이런 아파트 부동산 시장의 번성이 특히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아파트 건설을 강조하면서 더욱 가열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파트 동별로 외무성, 인민무력부 등 각 기관에 할당해 주고 자체 완공을 강압하면서 우후죽순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아파트 건설을 단속해야 할 당국이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등 아파트 부동산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평양 시내의 일부 간부와 부유층 사이에서는 아파트를 통해 권세를 과시하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아파트 실내장식이 유행하면서 각 기관.공장 건축부서가 돈벌이를 위해 실내장식업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으며, 인조대리석, 원목마루, 이중창틀, 고급커튼, 맞춤형 가구를 설치하며 내부개조 공사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앙당 재정경리부 소속 ‘백두산 건축연구원’은 김일성 가계의 전용 특각, 체제선전 건축물, 당·산하기관건물을 설계·건축해 온 북한 최고의 건축 설계·연구 기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들어 돈벌이를 위해 아파트 실내장식 사업에 뛰어들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논문은 평양시내 주택 실내장식 공사 수요가 급증하자 중국 업체들이 평양 진출을 위해 현장조사와 지사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실었다.
홍 부 연구위원은 “북한의 아파트는 경제적 부와 정치적 지위를 가진 자가 자신의 지위를 표현하는 신분적 경제재(經濟財)가 되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아파트는 계층 사다리의 위 칸으로 올라서고자 하는 신분 상승의 욕망을 만들어 내는 ‘상징적 공간’이며, 최근 들어 조성된 아파트 건설 ‘붐’은 통치전략, 정치권력, 시장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결합의 차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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