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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갈등에 지친 국민들 ‘명량’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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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6 22:50:28 수정 : 2014-09-16 22: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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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혼란과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올해처럼 정치적 지도자와 온 사회가 무능과 무기력에 허덕이며 갈 길을 잃은 때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못난 조상의 가난을 탓하며 많이 이뤘다고 자만하던 국민도 이제 그저 한숨만 내쉬고 있다. 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의 원인에 대한 공방을 비롯해 그 뒤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비생산적이고 실효성 없는 싸움으로 세월만 보내고 있는 한심한 정국에 국민은 분노와 실망을 넘어 이제 자조적인 체념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비교적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1597년 정유왜란의 해전 ‘명량’의 영화를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것은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해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인 듯하다.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사학
관객은 가슴이 터질 것같이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뻔히 다 아는 16세기 말의 역사에서 위안을 얻으려함일 것이다. 당시 조선 조정에서는 숫자와 능력을 전혀 알 수 없는 엄청난 적이 몰려오는데 올지 안 올지도 모른다고 대신들은 싸우고 있고, 왕은 물론 많은 권력자로부터 갖은 압박과 위협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초인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한 불세출의 수군 제독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해 국민이 어찌 열광하지 않겠는가.

이순신 장군이 전함은 물론 군량 보급, 훈련 상태, 군사적 기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부하 장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모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순신은 유교적 양반계급의 족쇄에 얽매인 장졸의 능력을 찾아내 적재적소에 배치해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23차례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이순신의 인화(人和)에 의한 소통능력을 보며 불통으로 일관하는 정국대치 속에서 누가 오늘의 길을 묻지 않겠는가.

명량해전의 위대한 승리는 중국의 조선사(造船史)는 물론 현지의 지리적 조건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준비하는 유비무환의 대실천적 전과(戰果)로 1894년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300년간 일본의 조선을 포함한 대륙침략 야욕을 저지시켰던 것이다.

이순신과 같은 시기 중국의 명(明) 제국에서는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대학자이며 사상가인 이지(李贄)가 형식으로 굳어져버린 유교적 전통과 힘들게 싸우고 있었다. 이순신은 칼로 싸운 무장이지만, 이지는 붓으로 시대와 싸우다 죽어간 ‘지식과 역사의 순교자’ 였다. 수많은 저서와 역사서로 시대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공격하며 유교의 개혁을 주장하다 잡혀 옥중에서 자결했으며, 그의 저서는 모두 불태워지고 금서(禁書)로 묶였다.

이순신의 목숨과 바꾼 해전의 승리가 조선을 구하고 300년간 일본의 대륙 진출을 억제한 동아시아의 위업을 달성한 데 비해 이지의 저서와 역사서에 깃든 사상은 20세기 중국과 동아시아의 사상과 문화 혁신의 중요한 지표가 됐으며 그가 5000년 중국 역사의 문화영웅으로 추대됐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16세기 역사에서 찾고 있는지 모른다.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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