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北인권법 제정 서둘러야 유엔총회가 개막되면서 북한 인권문제가 유엔 무대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조시킨 결과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국가이며, 이러한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은 국제사법재판소나 유엔임시재판소에 기소돼야 한다. 이에 북한당국은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인 13일에 북한은 조선인권연구협회의 이름으로 자국의 인권보고서를 만들어 발표했다. 당연히 북한주민들은 ‘주체사상에 기초한 인권’을 잘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은 또한 리수용 외무상을 15년 만에 처음으로 유엔총회에 참석시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론을 북한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기도라고 강력히 비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국내에서도 북한 인권문제가 다시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의 처리이다. 2005년 이후 제기돼 온 북한인권법안은 여야 간의 입장 차이로 계속 무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 기록전시관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보수·진보 세력 간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유엔인권최고대표 산하에 설치될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 국내에 설치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서울시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를 두고 국제사회에서는 강력한 규탄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는데 왜 국내사회에서는 여야 간, 보수·진보세력 간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가. 북한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인권유린 사례를 수집해 기록하고 보존하며, 북한 인권 관련 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여기에는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차이가 개입돼 있다.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거론하고 북한인권법을 만들자는 쪽은 그것이 북한 인권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고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취해야 할 당연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북한 인권문제를 우리가 나서서 거론하지 말고 북한인권법을 만드는 것에도 반대하는 쪽은 이것이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만 훼손시키고 북한의 인권상황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 내부의 이러한 정치적 대립은 결국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국제사회의 흐름에 뒤처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학 |
다른 하나는 동독의 정치범 석방을 위한 거래다. 서독정부는 60년대 초반부터 34억4000만마르크(약 15억달러)를 사용하여 3만3755명의 동독 정치범들을 석방해 서독으로 데려왔다. 이처럼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를 지원하거나 관계개선을 추구할 때 인권문제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다. 이러한 노력이 결국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이제 우리도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해야 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인권을 신장하는 데 적극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유엔의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 조속히 서울에 설치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대한민국의 자세이고 통일을 준비하는 기본 철학이 돼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국제학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