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노숙인 시설 결사반대” 6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고가차도 아래에는 ‘주민 의견과 공청회 없는 노숙인 시설을 결사반대한다’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 뒤로는 쪽방촌 주택들, 쪽방촌 리모델링 기간에 사용될 컨테이너 등이 보였다. 주민 A씨는 “관련 시설이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소문을 타고 노숙인이 더 많이 몰려든다”며 “급식소, 축구장, 쪽방촌 등 이미 들어와 있는 시설도 많은데 왜 유독 이곳에만 노숙인 시설을 계속 늘리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 일대가 이미 슬럼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시가 노숙인 시설을 짓는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파산자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서울시의 ‘모듈러주택’ 건립 사업이다. 모듈러주택은 공정의 대부분을 공장에서 진행하고 현장에서 마무리 시공을 간단히 하기 때문에 한두 달 만에 시공이 가능한 게 큰 장점이다.
그러나 강력한 주민 반발로 인해 석 달 넘게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곳에 사업 계획을 밝힌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그 뒤 지방선거가 지난 6월쯤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모듈러주택은 임대주택의 일환으로 긴급구호용 시설이기 때문에 노숙인 시설과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주민 설득의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가 주민설명회를 두 차례 시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지난 7월 시가 처음 시도한 주민설명회는 시작도 못했다. 주민들은 설명회 장소를 교회로 잡은 것을 문제삼으며 불참했다. 지난달 26일 두 번째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 입장만 재차 확인했을 뿐이었다. 두 차례 모두 서울시의 담당 공무원과 사업 시행을 맡은 SH공사의 담당 직원만이 설득에 나섰다. 공공 부문은 물론 시민단체 등 민간 영역에서 갈등조정 및 홍보 관련 전문가들을 사업 초기부터 투입하는 선진국의 과정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영등포구에서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영등포시장 내에 반값식당 운영을 추진하다가 결국 상인들을 위한 쉼터와 금융상담센터를 겸한 복지시설로 방향을 바꿨다. 또 내년 주민참여예산 사업 선정 과정에서는 가양대교 인근에 ‘노숙인자활농장 조성 사업(꽃으로 꿈꾸는 자활농장)’이 포함됐다가 서울시가 선정한 업체 관련자가 제안한 사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반대에 부딪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노숙인 관련 반감이 극심한 지역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상황이 이러하지만 대부분의 공무원은 아직도 ‘주민동의 과정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법·행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실정이다. 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민 반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의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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