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부족탓 2년 넘게 ‘유명무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앞은 보도블록을 새로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의 한 관계자에게 보행자를 위한 안전 인력이 있느냐고 묻자 “보행안전 도우미는 처음 들어본다”며 “그런 게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공사업체는 차도 일부에 안전 고깔을 세워두고 보행자 통로를 마련해 뒀으나 보행자들은 공사가 진행 중인 보도를 마구 다녔다. 공사현장에는 보도블록 등이 곳곳에 쌓여있어 위험해 보였지만, 무단 보행을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시가 보도 공사를 할 때 보행자 안전을 위해 2년 전 ‘보행안전 도우미 제도’를 도입했지만 비용 문제와 홍보 부족 등으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2012년 취임 후 “보도블록 시장이 되겠다”며 ‘보도블록 10계명’을 발표했다. 보도공사로 인한 보행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모든 공사장에 보행안전 도우미를 의무적으로 배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행안전 도우미는 임시 보행로를 안내하거나 장애인, 노약자들의 보행길을 직접 동행하는 등 공사장 전체 안전관리를 담당한다.
서울시는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올해 7월부터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인력은 현장에서 보행안전 도우미로 활동할 수 없다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안내인력이 없는 송파구의 한 보도 공사장에서는 보행자들이 포클레인이 왔다 갔다 하는 차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녔다. 포클레인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여성을 발견하고 옆으로 방향을 틀다가 자전거를 탄 학생과 충돌할 뻔한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현장의 한 관계자는 “공사 초기에는 보행안전 도우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 비용 문제가 있어 따로 두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강남구의 한 공사장에서 차량 통제 역할을 하던 박모(46)씨는 “시공사가 비용 때문에 안전을 뒷전으로 여기는 것 같다”며 “긴 공사구간을 나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맡고 있어 보행자 안전까지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런 탓에 공사장 인근 보행자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송파구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는 쇠파이프가 50m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나가던 시민이 부상했고, 올해 5월에는 강남구 신사동에서 철거 공사 중인 건물이 붕괴돼 시민 3명이 다쳤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전대책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도로법 시행령에는 ‘안전사고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문구만 명시돼 있을 뿐, 보행자 안전에 대한 구체적 규정은 없다.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도로는 지방자치단체 소관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안전관리자가 없다고 제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에서 공사장 점검을 다니면서 안전사고 대책이 미흡할 경우 벌금 등 행정제재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나·최형창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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