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장모(56)씨의 방 한쪽에는 가스 버너가 놓여 있었다. 그가 버너를 방에 두는 이유는 취사보다는 난방을 위해서다. 추위에 몸이 얼어붙으면 가스불을 켜 손을 녹이는 식이다. 장씨 방 안에는 버너 양 옆으로 옷가지와 종이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자칫 버너를 잘못 작동하면 큰불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장씨는 “위험한 걸 알지만 어쩌겠느냐”며 “지금은 추운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문래동 쪽방촌 주민들이 난방을 하지 못해 추운 방을 피해 골목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이재문 기자 |
중구 후암동의 이모(75·여)씨가 살고 있는 쪽방도 사정은 마찬가지. 천장까지 쌓인 이불과 옷가지로 어수선한 상태였다. 기름 난로로 겨울을 나고 있는 이씨의 집은 복도 끝쪽에 위치해 화재가 발생할 경우 탈출하기 어려워 보였다. 이씨가 살고 있는 골목으로는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다. 큰 길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4분 정도로 집 사이의 길이 좁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가 사용하는 전기장판 역시 구석이 검게 눌어붙어 있어 누전으로 화재가 날 위험성이 적지 않아 보였다.
소방당국은 소방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쪽방촌에 비상소화장비함을 설치해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함 위에는 물건이 쌓여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장비함에는 비밀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는 자물쇠를 채워 비상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관리 주체가 없어 비밀번호를 아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소방방재청의 한 관계자는 “매년 주택(아파트 등 공동주택 제외)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6000여건에 이른다”며 “이 가운데 70%가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 취약계층 가구”라고 말했다.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인세진 교수는 “쪽방촌과 같이 인화성 물질이 많고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은 늘 화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며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해 입주민들의 주의와 정부의 수시 점검을 통해 화재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선형·이지수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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