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자본·노동력 ‘습격’, 우리의 현실도 닮아 중국이 주권을 주장하는 본토 바깥 두 곳에서 흥미로운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9일 대만 지방선거에서는 친중국 성향의 집권 국민당이 타이베이(臺北)시 등 전략지역에서 참패했다. 양안(중국·대만) 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중국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또 다른 중화민족의 땅 홍콩에서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완전자유직선제를 촉구하며 시위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이 홍콩 경찰에 의해 연일 체포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온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
중국이 특별행정구 홍콩에 적용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국가, 두 체제)는 대만을 통일하는 최적의 방식으로 간주된다. 공산(사회)주의와 자본(민주)주의가 공존하는 ‘한 지붕 두 가족’을 용인하겠다는 솔깃한 유혹이다. 중국은 대만을 23번째 성(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대만은 중화민국(中華民國)이란 국호를 가진 독립국이다. 우리에게 ‘자유중국’이란 이름이 친숙했던 때가 있었다.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 1992년 우리가 일방적으로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중국의 영향력이 비대해진 지금은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망각을 강요당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통일의 대상인 대만과 달리 홍콩은 1997년 중국에 귀속되면서 50년간 일국양제를 보장받았다.
작금의 결과는 공교롭게도 두 땅을 뒤흔든 ‘청년 파워’의 성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만의 ‘해바라기운동’과 홍콩의 ‘우산혁명’이다. 해바라기운동은 중국과 체결한 서비스무역협정 철회를 촉구한 시위를 말한다. 지난 3월 학생운동 단체들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입법원(국회)을 점거하는 사태로 번졌다. 홍콩에서는 지난 9월28일 행정장관 자유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 역시 대학생 단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와 중고생 단체인 학민사조가 주도했다.
두 곳 청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의 절규가 그것이다. 기성세대는 중국과 접하면서 혜택을 누렸지만 젊은 세대에게 남은 것은 밀려든 중국 자본으로 인해 집값은 뛰고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피해의식뿐이다. 중국 최대 부호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홍콩 시위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당제가 의미를 상실한 홍콩에서 시위는 성과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만 선거를 통해 부활했다.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이라는 생각이 표심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조한 일국양제는 한낱 수사일 뿐, 공산당 독재는 불변임을 만천하에 고했기 때문이다.
홍콩인들이 ‘메뚜기떼’로 부른 중국(인)의 습격은 남의 일 만은 아닌 듯하다. 조만간 한국 방문 중국 관광객 600만명 시대가 열린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발효된다. 밀려드는 중국 자본과 관광객,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심화하는 우리의 현실은 대만, 홍콩과 닮았다. 제주도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한 투기 공세, 노동력 수급상 긍정적인 측면에도 우려가 커지는 노동시장 교란 문제 등 중국의 습격은 시작된 지 오래다. 문화재 훼손, 금연구역에서 흡연, 노상방뇨 등 중국 관광객의 추태는 관광객 다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홍콩과 대만의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자)처럼 20세기를 살아보지 않은 우리 청소년들의 앞날도 팍팍할 것 같다. 밀레니엄세대의 부모이기에 더욱 가슴 아프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이 중국의 통일 대상인 대만도 아니고 30여 년 후 일당독재 체제에 편입될 운명에 놓인 홍콩도 아니란 사실이다. 희망을 품고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다당제 민주사회인 게 천만다행이다.
신동주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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