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성 없다” 뉴욕 대배심 불기소 미국사회에서 다소 진정될 듯하던 인종갈등의 불길이 다시 번질 조짐이다. 미국 뉴욕에서 흑인을 체포하려다가 목 졸라 숨지게 한 백인 경찰관에 대해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미주리주 퍼거슨에 이어 또다시 백인 경관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이번 결정이 인종갈등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 정부는 파장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진화에 나섰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7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뉴욕시 자치구 중 하나인 스태튼아일랜드 거리에서 백인 경찰 대니얼 판탈레오(29)는 불법으로 담배를 팔고 있는 흑인 에릭 가너(43)를 발견하고 체포에 나섰다. 당시 누군가 휴대전화로 촬영한 영상을 보면 판탈레오는 바닥에 누워 있는 가너의 목을 팔로 감고 있다. 가너는 “숨을 못 쉬겠다”고 여러 차례 외쳤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가너는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당시 뉴욕시검시소는 가너의 사망을 ‘살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뉴욕시 스태튼아일랜드 대배심은 이날 “고의성이 없으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허용된 행동이었다”며 판탈레오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대배심은 백인 14명, 흑인 등 기타 인종 9명, 총 23명으로 구성됐다.
외신은 목조르기가 1993년 뉴욕경찰규정으로 금지됐지만 기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법으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너의 어머니 그웬 카는 “어떻게 사법시스템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판탈레오는 변호사를 통해 “가너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며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즉각 거리로 나서 대배심의 결정에 항의했다. 타임스스퀘어, 록펠러센터 인근, 그랜드센트럴역 등 뉴욕시 곳곳에서 시민들은 가너의 “숨을 못 쉬겠다”나 퍼거슨 시위구호 “손들었으니 쏘지마” 등을 외쳤다. 일부는 죽은 듯이 드러눕는 ‘다이인(die in)’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퍼거슨시와 같은 폭력 사태는 없었으나 4일 오전까지 6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워싱턴, 오클랜드 등 다른 도시에서도 동조 시위가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누구든 법 앞에 평등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면 큰 문제”라며 “대통령으로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에릭 홀더 법무부 장관은 “연방 시민권 법령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며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약속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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