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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몸통 흔드는 꼬리' 지라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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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11 05:00:00 수정 : 2014-12-31 15: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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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장인 김모(33)씨는 고등학교 동창인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일명 ‘지라시’를 제공받아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을 통해 퍼트린다. 김씨는 “전엔 정치·경제·사회 등 시사 이슈 중심이었지만 최근엔 연예인 가십성 이야기가 많다”며 “친구를 잘 둔 덕분에(?) 직장 내에서 소식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2. 일간지 기자 박모(49)씨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낀다. 예전엔 지라시가 고급정보지 수준의 우대를 받았지만, 최근엔 일반 대중들도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지라시를 주고 받기 있기 때문. 박씨는 “365일 정보를 쫓는 기자인 나보다 다른 일반인들이 더 빨리 많은 지라시를 받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설 정보지인 ‘지라시’이다. 언론이 통제되던 독재정권 시절엔 정보 유통의 순기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증권가를 중심으로 생산 및 유통되고 있는 지라시에 대해 알아본다. 보통 증권가에서는 모든 정보가 주가와 연결된다. 크게는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냐’에서부터 ‘특정 기업이 대규모 주문을 받았다’, ‘자금난에 봉착했다’ 하는 것까지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증권사 직원들 중심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모임이 생겨났고, 여기에 언론사 기자에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 관계자들까지 참여하는 그런 모임이 많아졌다. 여기서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주고 받다 보면 이것이 증권사나 언론사를 통해 확산이 되는데 이게 지라시이다.

◆ 정치권·증권가·기업정보 담당자,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 교환

실제 5월16일 오전 10시경 한 대기업 총수의 사망설이 증권가 메신저를 타고 급속히 확산됐다. 1시간 뒤 대형병원장이 급히 기자실로 달려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해당 기업은 다급하게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는 바로 증권가에 던져진 한 장의 지라시 때문이다. 지라시는 이처럼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유포시켜 기업이나 개인에게 큰 타격을 주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를 강타한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도 증권가 지라시에서 시작됐다. 이 문건의 사실 여부는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지라시는 '정보맨'으로 불리는 정치권·증권가·기업정보 담당자 등이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를 교환하면서 작성된다. 이렇게 은밀히 모인 정보는 사설 정보지 전문업체에서 기사 형태로 작성돼 증권가 등에 뿌려진다. 기업이나 개인은 1년에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까지 구독료를 내고 받아보기도 한다. 문제는 SNS를 타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루머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 종사자나 기자들이 많이 쓰는 한 온라인 메신저에선 "내가 퍼뜨린 지라시가 나에게 돌아오기까지 2분이면 된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이다. '몸통을 흔드는 꼬리'로 비유되는 지라시는 경제불황과 구조조정, 선거철 등 사회 안전성이 떨어질 때 괴력을 발휘한다.

지라시를 보는 의견은 둘로 나뉜다. “발본색원 돼야 할 정보 쓰레기”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낱낱의 정보를 꿰 맞추면 그럴듯한 종합성을 갖추고, 결국은 사실대로 밝혀지는 정보”라고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같은 지라시의 양면성은 그것의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고, 때마다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만드는 변수가 되곤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 사설 정보지, 얼마나 믿을 수 있나?

그렇다면 이 같은 사설 정보지에 실리는 정보는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사기관이나 권력기관이 만드는 동향보고서와 사설 정보지 지라시는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 지라시는 그야말로 카더라, 했다더라 인데 반해 정보기관의 동향보고서는 그런 소문을 확인하고 신빙성에 대한 판단까지 싣는 게 대부분이다. 사실 사설정보지도 언론이 통제되던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보 소통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에서 쓰지 못하는 게 없고 더구나 확인되지 않는 정보는 인터넷에 넘쳐나기 때문에 정보지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고 그만큼 신빙성도 떨어졌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 상대방을 악의적으로 헐뜯는 조작된 정보가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 즉, 이제 사설 정보지는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왜 이런 정보가 나도는지, 무슨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지라시의 내용이 악의적인 거짓말인지 아니면 사실에 소설이 덧붙여진 과장된 것인지 이것을 알아채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권력실세 두 사람이 만나 어떤 대기업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는 정보가 떴을 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대체로 진실인 경우가 많지만, 대화 내용은 소설인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두 사람의 전후 발언 또는 측근들을 떠본 뒤 추정해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정보도 이제는 거의 모두 공개되고 수백~수천여곳의 인터넷 언론에 한 줄이라도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정보로서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 실정이다.

이전에 대관 업무를 담당했던 대기업 직원 최모(53)씨는 “적게는 5명 안팎이 팀을 이뤄 업무를 맡는데 일의 성격상 고위급을 만나야 고급 정보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임원급이 대거 대관 업무를 맡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또 국감 때 의원들로부터 심하게 지적받은 후에 뒤늦게 기자 출신 등 정보 파악에 빠른 인물들을 대거 영입해 대관 업무를 맡기는 기업들도 많다.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대기업 직원 박모(49)씨는 “평소 일주일에 한 번 임원회의 때 최고경영자(CEO)에게 제출할 정보보고를 A4용지 1장에 정리해 제출한다”면서 “국감 때 CEO가 증인으로 채택된다거나 검찰이 비자금 의혹 관련 내사에 들어갔다는 ‘특A급 정보’는 절차 없이 임원을 통해 CEO가 알 수 있도록 해 바로 특별 대응팀을 꾸리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결국 '돈'과 연결된 문제…100% 근절되긴 어려울 듯

다만 증권가 지라시는 개별 기업들의 내밀한 정보가 가끔 실리기도 한다. 특정 애널리스트가 직접 기업을 탐방해서 분석해 놓은 것도 있지만, 기업 내부자가 흘리는 것이나 그 주변사람들이 무심코 주워듣고 전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결국 돈하고 연결된 문제라 지라시가 아예 사라지긴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현직 변호사는 "지라시의 내용이 단초가 돼 소송이 진행되거나 수사 의뢰에 들어가는 경우가 꽤 많다"며 "이런 경우 소송 과정에서 사설정보지의 내용들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신문과 방송에 자주 오르내리는 '찌라시'는 '광고로 뿌리는 종이'라는 일본어 '지라스'에서 유래된 용어로 '지라시'가 정확한 표현이다. 실제 국립국어원은 지라시를 외래어로 등재하고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 쪽지'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박용찬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은 2005년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에서 '지라시'를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일본어 투 용어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하며 '낱장 광고' '선전지'로 순화해서 쓰기를 권고한 바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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