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폐기물 정화 생태균형 잡아줘 최근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연구팀은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에서 바이오 배터리로 활용 가능한 박테리아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질병이나 감염을 연상하게 되는 세균, 박테리아는 1㎜의 1000분의 1 크기로 매우 작지만 기막힌 생존능력 덕분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지구의 고층 대기에서 심해저, 남북극 얼음, 펄펄 끓는 온천수, 사막과 염전, 광산폐수, 하수종말처리장, 그리고 우리의 몸 내외부에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구의 온갖 환경에서 박테리아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경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
이 간단한 무기물이 모여 결합되면 소위 유기물이라고 불리는 당류나 탄수화물·단백질·지방 같은 점점 더 큰 분자의 유기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작고 간단한 무기물을 크고 복잡한 유기물로 만드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고맙게도 우주를 넘어 무한 공급되는 태양빛을 지구상의 식물이 에너지로 사용해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한다. 식물과는 달리 동물은 광합성 능력이 없으므로 식물이나 다른 동물이 생산한 유기물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식물은 유기물을 섭취할 수가 없고 대신 무기물 영양분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동식물 구분 없이 모든 생명체는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한데 이 에너지는 유기물을 무기물로 분해할 때 발생한다. 이에 지구상의 생명체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기물→유기물→무기물→유기물로 이어지는 물질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만약 물질순환 시스템에 고장이 나거나 어느 한 방향에 과부하가 걸리는 비평형상태, 즉 어느 한쪽에 치우쳐 무기물이나 유기물이 쌓이기 시작한다면 지구시스템은 어떻게 될까. 화두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이산화탄소 때문으로 인류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태우는 바람에 온실기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있다. 유기물은 무기물로 급속 전환되고 있는데 무기물을 유기물로 되돌릴 녹지, 즉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삼림과 같은 식물의 광합성 면적은 자꾸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 반대로 유기물 쪽으로 평형이 쏠리면서 유기물이 엄청 많이 늘어날 경우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넘쳐나는 유기물이 향긋한 과일이나 빈곤 퇴치용 식량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지구 곳곳에서 심각한 환경폐기물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음식쓰레기와 하수는 물론 식품가공, 발효공업, 축산폐기물 등 엄청난 양의 유기 폐기물이 생산되고 있다. 유기 폐기물 일부는 폐수처리장, 하수종말처리장 등에서 화학물질이나 박테리아를 이용해 유기물을 작은 유기물 분자로 쪼개거나 완전 무기물로 전환되나 상당 부분은 자연계로 방출된다. 원래 자연은 나름 정화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정화란 말 그대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이 버려진 유기물을 섭취·소화·분해·제거하는 절차를 말한다. 각종 유기 폐기물은 시냇물, 지하수를 따라 하천으로 흘러들어가 바다로 이동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유기물은 계속 박테리아에 의한 분해과정을 거쳐 무기물로 전환된다. 이렇게 분해 전환된 무기물은 다시 식물 플랑크톤, 풀, 나무의 광합성 작용을 거쳐 유기물로 전환된다. 그런데 유기 폐기물이 자연계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양이 많고 자연생태계가 섭취 분해하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농축되거나 유독한 유기물은 오히려 자연생태계를 병들게 할 뿐 자연정화는 일어나지 못한다.
지구 생태계에 박테리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세상은 냄새나는 온갖 유기 폐기물이 점차 쌓여가고, 반면 식물은 무기 영양물이 부족해 누렇게 변해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박테리아야말로 지구시스템의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이다.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정경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