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된 일본 급격히 좇고 있는 한국에도 의미있는 메시지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언숙 옮김/민음사/1만9500원 |
최근 유럽을 다룬 국제뉴스에서 극심한 청년실업에 항의하는 젊은이들의 시위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다. 2011년 영국에서는 청년층의 불만이 폭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청년실업 사태에 직면해 있는 데다가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사회복지체계도 빈약한 우리 사회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유럽의 젊은이들처럼 불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까.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될 만한 책이다. 2011년 일본에서 출판된 책으로 한국과 유사하게 대규모 청년실업 현상을 겪고 있지만,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조용한 청년층을 가진 일본 사회 젊은이들에 대한 색다른 분석을 실었다.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30세의 젊은 사회학자. 이 책을 썼을 당시의 나이는 26세에 불과했다. 사실상 일본의 젊은이가 자신의 세대에 대해 스스로 내린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현시대 일본 젊은이들의 숨겨진 속내가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책은 서두부터 일본의 젊은이들이 유럽의 젊은이들과 달리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한마디로 단언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것. 바로 옆 나라이기 때문에 전 세계 누구보다 일본의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4명 중 1명꼴에 달할 정도로 극심한 노령화, ‘격차사회’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일반화된 비정규직, 상시화된 청년실업 등 청년층의 삶의 질 문제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행복하다니 말이다. 책은 실제 여론조사 등을 통해 20대의 70% 이상이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최근 40년 동안 가장 높아진 것. 이쯤 되면 ‘일본의 젊은이들은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의 고통을 긍정적 마음으로 돌파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한국과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가 썻다. 그는 책을 통해 암울한 미래 때문에 역설적으로 현실에 만족해 버린 동시대 일본 젊은이들을 분석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저자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현실의 만족을 위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마침 인터넷의 등장과 대량생산사회의 도래로 큰 욕심만 없다면 많은 돈이 없어도 최소한의 문화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부모와 함께 살며 주거비와 생활비를 줄이고,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번 돈으로 값싸지만 패셔너블한 옷을 사입는다.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며 공감대를 형성해간다. 문화생활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개인기기를 통해 해결한다. 미래에 대한 기대만 없다면 이러한 삶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너무나 암울한 미래 때문에 역설적으로 현실에 만족해버린 젊은 세대에 대한 우울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가 비단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미래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행태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20대일 뿐, 이러한 정신적 특질은 일본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 비정규직, 실업, 빈곤, 재정적자 등 모든 세대가 공유하는 사회적 문제를 ‘세대 간 갈등’으로 치환해 가려 하는 기존 담론을 정면 비판한다.
일본 젊은이들의 현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읽는 동안 한국의 모습이 계속 떠오를 수밖에 없는 책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뤄낸 경제성장과 최근 이어지고 있는 장기간의 불황, 청년들의 취업난 등 유사점이 많은 데다가 청년층의 보수화 등 나타나는 현상 또한 비슷하기 때문이다.
평균연령 38세로 평균연령 45세의 ‘늙은 일본’을 급격히 따라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우울한 현실을 먼저 겪고 있는 일본의 젊은이가 내놓은 독창적인 ‘젊은이론‘이 좋은 화두가 될 만하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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