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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109〉 희망의 건축 #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좋아하는 소설가를 꼽으라면 나는 제일 앞자리에 프란츠 카프카를 내세운다. 또한 그를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의 소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고, 심지어 이해는 고사하고 제대로 읽지도 못한다. 그의 소설들은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뙤약볕을 걷는 듯한 무게를 느끼게 되며, 인내심을 총동원하게 된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감정은 사실 대부분은 경외감일 것이고, 약간은 무언지 알 수 없으나 너무나도 사실적인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늘 다소 엉뚱하고 부조리한 상황으로 시작하는데, 천연덕스럽게 그 안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채워지고 주인공들은 그런 상황을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사람이 벌레가 된다든가, 갑자기 법원에 끌려가서 모진 수모를 받는다든가, 어떤 성에 채용되어 성문 앞에 도착했으나 들여보내주지 않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500쪽 가까운 분량이 채워진다든가 하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다문화가정을 돕기 위한 적십자의 지원 대상이 된 철원주택의 변경 전 사진(위)과 적십자 회원들의 도움으로 단열·안전 등 기본적인 환경이 개선된 뒤 주택의 모습.
소설 ‘성(城)’은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K는 밤늦은 시간에 도착했다”라는 아주 간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베스트베스트 백작의 성에 측량기사로 초청된 K라는 사람이 그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나는 그 소설이 좋다길래 어느 날 문득 집어 들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책도 많이 안 읽으면서 지적 허영심만 대단해서 꼭 그런 소설만 집어 드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소설은 내가 골랐던 다른 소설들 중에서도 특히 나를 곤혹스럽게 했고 궁지에 몰아넣었다. 나는 그 책을 읽다 말다 하며 몇 년 동안 반복했다. 줄거리도 없고 진행도 없으니 200쪽 정도 읽다가 덮고 다시 펴서 읽기 시작하다가 덮고는 했는데, 다시 읽기 시작할 때마다 그 생소함은 가시지 않았다. K는 정말 이상한 상황들을 만나고 정말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며 결국 성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문득 이야기가 끝난다.

카프카의 소설에 나오는 상황은 황당하고 생소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사는 조건과 환경을 아주 극단적으로 심지어는 리얼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너무 리얼한 민낯을 보면 낯설어지는 것처럼, 카프카가 던져준 주제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우리를 피곤하게 했었던 것이라고 혼자 자위해보았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일부러 외면하고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런 감정적인 기제가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는 괴로운 현실과 그 현실 안에서 낙천적으로 살고자하는 주인공 그리고 그를 앞으로 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힘이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살아 나갈 수 있겠습니까.” ‘성’에서 주인공 K가 한 말이다. 도무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좌절 속에서 속이 빈 것처럼 계속 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너무나 담백하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겨울을 버틸 수 있는 것은 겨울의 끝은 봄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세상이 힘들고 험해도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것은 희망이라는 아주 멀리서 가느다랗게 비추는 빛 때문이다.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가 대지진이 발생했던 아이티의 한 지역에 세운 학교.
# 건축의 재료는 희망이다


집을 짓는 일이, 그리고 집을 설계한다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속하는 이유는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률가가 하루 종일 사건이나 문제와 만나야 하고 의사가 늘 아픈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건축가는 하루 종일 희망과 만난다. 건축의 재료는 궁극적으로는 희망이다. 우리를 찾는 모든 사람은 꿈꾸어 온 집을 짓겠다는 희망을 가득 담고 온다. 우리는 그 희망을 집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옮긴다.

2년 전 대한적십자사에서 다문화가정을 돕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힘을 좀 보탤 수 없느냐고 해서 잠시 도와 준 적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도와주는지도 잘 모르고 그저 취지가 좋기에 힘을 보탰는데, 대부분은 한국에 시집 온 외국인 신부가 있는 집의 주거 및 보건 환경 개선 사업이었다. 주로 동남아 지역 출신인 부인들은 대부분 아주 활기차고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여러 가지 경로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만난 집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대가족이고 가족 중 일부가 몹시 아픈 상황이었다. 전국에 있는 다문화가정 중에서도 도움이 시급한 집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 집에 배정된 예산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예산으로 환자를 돌보고 집도 개선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 우리나라 농촌에 와서 활기를 넣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

우리가 관여했던 집들이 몇 채 있었는데, 그중 철원에서 만난 필리핀인 부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집온 지는 15년 되었고 방 두 칸과 부엌이 딸린 아주 낡은 집에서 두 아들과 시부, 몸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요양원에서 일을 하며 가족들을 돌보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격이 아주 밝았다.

배정된 사업비를 쪼개서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 집을 고치는 일이 주어졌다.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 춥고 어두운 집이 일단 문제였지만, 그 옆에 낙후된 축사가 오염된 채 방치되어 있는 등 주변 개선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먼저 난방을 위해 설치한 연탄보일러가 제대로 된 환기창도 없이 집 안에 들어와 있어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단열을 보강해 열 손실을 줄이고, 지붕도 개량하기로 하는 등 내부 공간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어 어린 두 아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서 그것만은 꼭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일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부족한 예산으로 과연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사이도 없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큰 자원이 가동되었다. 그건 적십자사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던 힘이었는데, 청소년적십자 학생들 한 무리와 철원 적십자사 회원들이 개미처럼 모여서 순식간에 마당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건축 관련업을 하는 회원들이 자원하여 집 안팎을 수리해줬다. 마치 동화에서 요정이 마술봉을 휘두르듯 일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사이 오랫동안 몸이 불편해 쉬고 있던 가장도 수술을 하면 완쾌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료 결과를 듣고 희망에 차서 열심히 일을 나가 막내의 자전거를 마련했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 놓치면 한 시간씩 걸어 학교에 가곤 했던 아이를 위한 귀한 선물이었다. 공사가 끝나고 모두들 넓은 마당에 즐겁게 모여 있던 오후,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빙글빙글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큰 그늘을 드리운 마당의 나무 가지마다 희망이라는 열매가 가득 피어오른 행복한 날이었다. 

브라질의 산타 크루스에 있는 노숙인 월드컵 유산 센터.
출처=openarchitecturenetwork.org
# 희망을 담은 공간들을 나누다

어려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일로 가장 잘 알려진 단체는 ‘해비타트(habitat)’가 아닐까 싶다. 1973년 미국의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 부부가 아프리카 자이레에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었던 것에서 시작되어, 1976년 기독교 자원봉사운동단체의 성격을 가진 국제해비타트가 창설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92년 한국 사랑의 집짓기 운동연합회가 출범하여, 일반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건축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해비타트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늘 시간에 쫓기고 비용이 부족한 이런 사업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말하자면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계획과 실행이 늘 아쉬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저 비를 피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급급하다면, 그간의 역사를 통해 인류가 쌓아온 그 무한한 능력과 기술은 참으로 공허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설립된 비영리 건축 단체가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Architecture For Humanity)’이다. 이 단체는 1999년 영국 출신의 건축가 캐머런 싱클레어(Cameron Sinclair)와 저널리스트 케이트 스토(Kate Stohr)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위기에 처한 인류를 위한 전문적인 디자인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목표로 인도주의적 건축을 실천하고자 한다. 캐머런 싱클레어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우리의 역할이란 환경을 향상시키는데 있지만, 실제로 극소수의 요구만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잘 고안된 디자인이 비용 문제에 묶여 있으면 곤란하다”며 생각은 비슷하지만 이런 일에 참여할 만한 기반이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이 조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웹사이트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디자이너, 건축가, 시공자, 후원자들이 연결되면서, 재난지역 난민들을 위한 임시 주택에서 학교, 보건소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실현되었다. 또한 ‘오픈 아키텍처 네트워크(openarchitecturenetwork.org)’라는 오픈 소스 웹 사이트를 열어 관련 자료의 자유로운 열람과 참고가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그들은 2010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아이티 주민들을 위해 거의 5년에 걸쳐 주택, 병원, 사무실, 그리고 학교를 포함한 13개의 빌딩 등 50여 건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1만8000여명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공간과 더불어 이들의 작업은 100만명 이상의 아이티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재난지역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도 지속적으로 구상하고 있다.

브라질의 산타 크루스에 있는 노숙인 ‘월드컵 유산 센터(The Homeless World Cup Legacy Center)’는 축구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유도하는 프로토 타입 시설로 지어진 것이다. 2010년 가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노숙인 월드컵이 열렸는데, 아키텍처 포 휴머니티와 주최 측, 그리고 나이키가 현지 파트너와 협력하여 이 센터를 세워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위한 서비스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노숙인 월드컵 재단은 노숙인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도록 격려하고 힘을 불어넣고 있는데, 2012년까지 70개국 이상에서 4만명 이상이 매년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이 녹록했던 적은 세상이 만들어진 후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막대한 에너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우리를 웃게 만들고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인생도 건축도 그리고 우리의 모든 생활은 희망을 통해 영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희망과 그 희망을 담는 공간들이 자라나고 있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그들은 그곳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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