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 지식문화 귀하게 여겨야 도호쿠 대지진 이후의 방사능 공포에도 6개월에 한 번은 꼭 일본을 찾는 이유는 친구도 온천도 아니고 고서점(古書店) 때문이다. 도쿄 진보초에 며칠을 파묻혀서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에 흠뻑 빠지는 시간이야말로 더할 수 없는 지복(至福)의 순간이다.
중국 베이징의 류리창(琉璃廠) 거리도 황홀하다. 중궈서점(中國書店)과 룽바오자이(榮寶齋), 원우(文物)상점에 들러 오래된 전적의 향기를 맡다가, 룽바오자이에서 옛 그림을 구경하고 화선지를 산다. 류리창은 언제나 국내외의 학자, 예술가, 간서치(看書痴)들로 북적거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웃 중국·일본의 문화를 폄하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자국 전통문물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보면 오히려 우리가 두 나라에 한참 못 미친다. 한류라는 이름의 가무연희(歌舞演戱)가 조금 인기를 끈다고 해서 마치 우리 문화가 상당히 앞선 걸로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
화봉문고 여승구 대표는 한국 고서점이 몰락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첫째, 국민이 책을 안 읽는 풍토 때문이다. 둘째, 후진적인 고서 유통 질서다. 셋째, 전문적 식견과 경륜을 갖춘 고서점 주인이 적다는 것이다. 고서적상은 서지학자 못지않은 안목을 갖춰야 하고, 그 방면의 학자를 능가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돈 안 되는 일에 인생을 바칠 젊은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고서점 문화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독자에게 있다. 언제부턴가 고서의 새로운 독자가 탄생하지 않는다. 한문 교육이 중지된 탓이다. 대학교수조차 한문 전공자가 아니면 옛 문헌을 원전으로 읽지 못한다. 더 기막힌 일은 대부분 대학의 교수 연구업적 평가에서 한글로 쓴 논문 점수를 영어논문 점수의 반도 안 쳐준다는 사실이다. 이런 평가기준을 한국사건 국학이건 아랑곳없이 들이대고 있다. 이런 판국에 누가 고서를 읽겠는가.
대학이 이렇게 된 것은 국내 모 신문사가 대학평가를 한답시고 만든 기괴한 잣대 때문이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대학당국이 더 문제다. 한글과 우리 옛글인 한문으로 쓴 논문은 학문적 업적에 관계없이 모조리 폄하하는 이상한 학술 평가가 이 나라 국학을 고사시키고 있다. 스스로 제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노예근성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웃 일본만 해도 책을 ‘혼’(本)이라 쓴다. 책이 근본이란 뜻이다. 중국은 국력 신장에 따른 전통문화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고서적 유통망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우리만 동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지식문화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귀하게 보겠는가. 우리는 예부터 활자문화 선진국이다. 동아시아 시대를 앞장서서 이끌기 위해서는 잘못된 제도를 뜯어내야 하지만, 사람의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우선 ‘헌책방’이란 말부터 ‘고서점’으로 고치자.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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