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부 갈등은 2013년 6월 원 전 원장을 기소할 때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 수사하겠다는 의견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채 전 총장은 수사팀에 힘을 실어줬으나, 법무부가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결국 수사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절충안’을 택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은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2013년 수사를 지휘했던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사진은 같은 해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 지검장(왼쪽)이 윤 팀장의 ‘항명’ 발언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 세계일보 자료사진 |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윤 팀장과 조 지검장이 각각 ‘외압’과 ‘항명’을 주장하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윤 팀장과 박형철 당시 부팀장은 징계를 받고,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발령 났다. 윤 팀장에 이어 수사팀을 맡은 박 부팀장은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힘겹게 공소유지를 이끌었다. 이후 1심 재판에서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댓글 수사’가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수사팀은 선거법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박 부팀장을 중심으로 항소심 재판 내내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이메일 첨부파일 증거능력 인정 및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고, 결국 공직선거법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내분 일었던 검찰 조직 상처
법원의 이날 판결로 그간 내부 갈등을 겪은 검찰 조직은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원 전 원장의 대부분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이끌어내면서 검찰이 성과를 올린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법무·검찰 수뇌부엔 머쓱한 상황이 됐다. 특히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모양새가 구겨졌다. 황 장관은 원 전 원장 구속 수사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황 장관은 현 정부의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 원 전 원장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법무·검찰 수뇌부는 수사팀 검사들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방해했다는 비난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실제 원 전 원장에 대한 1심 판결에서 공직선거법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이후 검찰은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항소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그간 법원이 무죄를 내린 사건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티타임까지 개최했던 것을 비춰 보면 이례적인 행보였던 셈이다.
반면 이번 판결로 윤 팀장과 박 부팀장은 명예회복의 기회를 얻은 셈이 됐다. 각각 특수·공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두 고검 검사는 사법연수원 기수로 볼 때 대검 참모 후보군에 속한다. 이에 따라 설 연휴를 전후해 있을 고검 검사급 정기 인사에서 이들이 어떤 자리에 배치될지 관심사다.
원 전 원장의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검찰이 수사 중인 남은 사건 결과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은 국정원 직원이 2011∼2012년 호남과 야당을 비하하는 인터넷 글 3000여건을 올린 일명 ‘좌익효수’ 사건을 수사 중이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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