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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주인 없는 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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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11 21:50:13 수정 : 2015-02-11 21: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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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한번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어
대대손손 물려줄 소중한 자연유산
예로부터 사람들은 의식주에 필요한 재료 가운데 많은 것을 산에서 구했다. 산자락의 논밭에서 면화, 삼베, 모시 등 식물성 재료를 얻고 동물의 털, 깃털, 가죽을 이용해 옷가지와 이부자리 등을 만들어 추위와 더위를 견뎠다.

봄에 보리가 익기 이전 굶주리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산나물을 캐고 약초를 채취하기 위해 산을 오르내렸다. 소나무의 껍질 속 황백색 속살인 송기를 벗겨 삶은 뒤 곡식과 끓인 죽으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초근목피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요즘 사람들이 몸에 좋다 하여 찾는 건강식과 민간요법에는 가난했던 시절 살아남기 위해 선조들이 자연을 이용했던 지혜와 경험이 녹아있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
여름에 산을 푸르게 하는 울창한 숲은 더운 대지를 식혀주는 천연 냉장고의 기능을 했고, 항상 시원하고 맑은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였다.

장마와 태풍 등으로 폭우가 내릴 때 산에 있는 기름진 겉흙이 빗물에 휩쓸려 일시에 하천으로 흘러넘치는 피해를 줄이는데 숲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금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국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삼고 산과 물, 그리고 숲을 관리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었기에 내린 비를 잘 관리해 홍수 피해를 줄이는 한편 비가 내리지 않아도 가뭄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물의 공급처이자 저장고인 산과 숲을 잘 보살피는 정책을 펼쳐나갔다. 자연의 질서와 섭리를 깨우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실천한 것이다.

가을이 되면 산에 있는 풀과 나무는 열매, 뿌리, 버섯 등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사람들에게 공급해 한겨울에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곳간이었다. 튼실한 나무들은 생활에 필요한 생활도구, 농기구, 가구 등을 만들고 집을 짓는 데 요긴한 재료로 사용했다.

우리 겨울은 매우 춥고 길어서 따뜻한 집과 온돌은 월동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겨울나기 옷가지와 김장을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중요한 숙제였다면 밥을 짓고 방을 덥히기 위해서 필요한 장작과 숲 등 땔감을 준비하는 것은 가장이 책임질 중요한 임무였다. 이런 나무를 공급해주는 곳도 산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이용하되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산나물을 채취하되 싹쓸이하지는 않았고, 버섯을 딸 때도 포자를 날려 어린 버섯이 자리할 수 있도록 일부는 남겨두었다. 감나무의 감을 거둘 때도 익은 감 몇 개를 까치밥이란 이름으로 남겼던 것은 까치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떨어진 씨앗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 숲을 이루는 생태계의 천이를 배려한 것이다.

요즘 며칠간의 동계올림픽 행사를 위해 수백년에 걸쳐 형성된 원시림을 잘라내고 지역 발전과 접근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높은 산까지 케이블카를 놓아야 한다는 명분이 산과 숲에 상처를 내는 데 동원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은 자연생태적으로 취약한 산꼭대기를 오르지 않고도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주민에게 고용과 수익을 창출했다. 여수와 통영의 케이블카가 높은 국립공원에 말뚝을 박지 않고도 지역경제에 활력을 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이든 강이든 한번 망가지면 자연생태계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조상들이 산에 들 때 땅에 있는 벌레를 고려해 짚을 느슨하게 짠 오합혜라는 짚신을 신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 볼 일이다.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질서 있게 환경친화적으로 자연을 이용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국민의 즐길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방안을 찾는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 더 이상 산은 누구나 단기간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아니고 현세대가 잠깐 빌려 쓰고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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