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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가사키의밖에서일본을보다] 일본국 헌법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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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16 21:24:36 수정 : 2015-02-16 21: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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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종파 중에 퀘이커(Quaker)라는 단체가 있다. 퀘이커는 기독우회(Religious Society of Friends)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으로,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설립된 종교단체이다. 퀘이커라는 것은 주로 신의 말에 떨었다는 것에서 붙여진 속칭이다. 그들의 특징은 철저한 평화주의로 폭력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즉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여기에 속해 있을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철저한 비폭력의 퀘이커와 일본의 관계가 흥미롭다.

이미 맥아더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선교사의 성격이 더 강해 일본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점령 하의 헌법 개정 작업이 맥아더 한 사람만의 재량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맥아더가 일본 점령의 최종 책임을 지는 미국 정부의 의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실 미국은 1942년 시점에서 일본의 패전을 상정하고 일본처리안을 입안했었다. 미국 국무성 소속으로 대일점령정책을 입안한 인물이 바로 휴 보튼(Hugh Borton)으로 그는 퀘이커 신자였다.

야가사키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보튼의 평화주의가 ‘일본국 헌법 9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헌법 9조의 일본 측 당사자였던 시데하라 키주로(幣原喜重郞) 수상이 기독교 신자였는지에 대해 밝혀진 바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아내가 퀘이커 신자였으며, 학회의 연구자료에 의하면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증언이 있다. 또한 시데하라의 아들도 미국의 퀘이커 학교로 유학까지 보냈다. 이러한 점에서 추측하건대 시데하라는 적어도 퀘이커와 공존할 수 있는 사상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맡으며 일본과 미국의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한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도 퀘이커 신자였다. 또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의 어린 시절 미국인 가정교사였던 바이닝 부인도 퀘이커 신자였다. 퀘이커가 일본과 미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국 헌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점령군은 여러 국가의 헌법을 참고로 했는데 일본법 중에서는 기독교 사상에 깊이 심취했던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의 메이지 헌법 초안 ‘일본국 국헌안’(1881)을 참고로 했다. 메이지 헌법 제정 시에는 무시됐던 그의 헌법 초안이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연합군총사령부(GHQ)의 눈에 띄게 돼 맥아더의 초안에 포함된 것이다.

이상의 점으로 보아 일본국 헌법의 중심축에 기독교 사상이 있음은 명백하다. 중심축을 천황에 둔 메이지 헌법 제정 이후 일본은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것은 민족의 중심축을 아시아와 세계에 두려고 했기 때문에 생긴 과오였다. 이에 비해 현행 헌법의 배경에는 기독교사상이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 근본을 이루는 존재를 궁극의 존재라 부르건, 하느님이라 부르건 그 존재는 공간적으로는 세계적 보편성, 시간적으로는 역사적 영원성을 갖춘 존재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헌법 개정은 9조의 문제가 주로 거론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이 중심축 문제가 아닐까.

야가사키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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