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52)작가의 ‘전생퇴행’ 이야기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매달 한 번씩 심리상담사에게 최면을 통한 ‘전생 퇴행’ 경험을 해 오고 있다. 3∼4시간 정도 최면에 빠져 있지만 의식은 또렷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들도 아주 선명하다. 그는 전 과정을 녹음하고 이미지는 캔버스에 옮겨 작품을 만들었다.
‘전생퇴행’은 전생의 기억들을 이용하여 현재의 문제들을 치료하는 전생요법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인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불교의 업(karma)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과거의 업 때문에 현재의 질병, 인간관계 문제와 각종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생치료의 논리 속에는 환생이나 윤회의 개념이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영혼은 육체적인 삶이나 죽음과 관계없이 늘 우주에 존재하면서 육체의 옷을 입고 이 땅에서의 삶을 계속하기 위하여 환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불교적 윤회다. 1980년대 들어 서구에서 전생퇴행이 인간영혼의 순례와 생명의 의미 쪽으로 관심의 방향이 옮겨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수경 작가가 깨진 도자 파편을 퍼즐 맞추듯이 이어 만든 작품 옆에 서 있다. 그는 “치유야말로 생명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진화’라고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
그가 또 다른 전생퇴행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다. 포졸들이 그를 절벽으로 끌고가 바다에 내던졌다. 죽음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숨이 멎었지만 그는 용 장식의 옥비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풍랑이 이는 바닷속에서 그는 곧 물거품으로 변했다. 물거품이 된 그는 거대한 용은 물론 작은 물고기떼, 산호, 또는 꽃과 같은 모양도 만들어 냈다. 무궁무진한 자유자재로움에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다란 해일이 되고 말았다. 마을 전체를 완전히 쓸어버렸다. 해일로 변모한 그는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이제 전부 깨끗해졌네, 나는 지구를 위해서 당연한 일을 한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영은 산꼭대기 가장 큰 전나무에 스며들었다. 그는 뿌리를 통해 바다의 생명체들과도 교신을 했다. 곧 화산이 폭발하고 생명을 잃은 그는 아름다운 빛 줄기를 따라서 하늘로 올라갔다. 해파리처럼 생긴 반투명의 물체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것들의 대부분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빗물로 변해서 땅에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하늘로 올라 빛 속으로 들어갔다. 파노라마 같은 장면이다.
“나는 고요하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떠다니기도 했다. 저 멀리에 신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행성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그중에는 지구도 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고요히 자신의 행성을 품에 안아 돌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나는 엄청난 굉음과 광채가 뒤엉킨 터널로 쑥 빨려 들어갔다. 나는 일순간 다른 차원을 통과했다. 나는 태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훈훈한 바람에 실려오는 흙 냄새가 마음을 포근하게 해줬다.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내가 흑인 사내아이로 세상에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중견 작가인 그가 왜 갑자기 ‘전생퇴행그림’을 들고 나왔을까. 버려진 도자 파편들을 하나하나 퍼즐 조각 맞추듯이 이어 붙여,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으로 이미 국제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라는 점에서 의아할 수밖에 없다.
심청이를 만난 장면을 그린 ‘전생퇴행 그림’. 여자애들이 한줄로 물위에 떠 있었는데 심청이가 작가에게 자신은 하나가 아니고 12명이라고 했단다. |
실패작으로 깨어진 도자 파편들을 모아 재탄생시키는 그의 작업도 사실상 부활이자 윤회다. 보다 성숙해 가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메타포다. 불교적으로 말해 업이 소멸되어 가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생퇴행 그림에 대해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체계와 크게 어긋나는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문해 보아야 한다.”
그는 전생퇴행 경험을 통해 인생의 관점이 바뀌었다. 죽음마저도 이젠 두렵지 않다. 상처투성이의 마음도 치유가 됐다. 적어도 그에겐 실용성이 입중된 셈이다. 전생치료법이 의학계에서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는 별개다.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확장한 것이 큰 소득이다. 전생퇴행 그림은 5월17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수경’전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6월부터 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진다.
편완식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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