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는 4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김모(29)씨는 소화불량과 피부질환이 겹쳐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음식도 가려 먹어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김씨였기에 좀 뜻밖이었다. 더군다나 그토록 기다리던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아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의사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예비신부들이 이따금씩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그동안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결혼식 준비부터 예단·예물·신혼여행까지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하소연했다.
#2.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35)씨는 최근 4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올해 결혼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신혼집을 알아보려고 지난 연말부터 몇 달간 발품을 팔았지만 전셋값이 급등해 신혼집을 구하지 못했고, 예식장 등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 박씨는 “1억원 정도를 갖고 신혼집을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거 같다”며 “일단 현금을 더 모은 뒤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야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3. 최모(30·여)씨는 올 초 결혼 허락받기 위해 3년간 사귄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부모님이 당연히 허락할 것이라 믿고 있던 최씨는 아버지가 반대하고 나서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버지가 "집은 남자가 사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 이에 화가 난 남자친구측 부모는 4억원짜리 33평 아파트 전세계약 한 뒤 "혼수는 알아서 해오라"며 두고 보자는 투로 말했다. 결혼자금으로 최대 3000만원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던 최씨는 양가 부모의 기싸움에 질려버린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난처해하고 있다.
최씨와 남자친구처럼 달콤한 연애를 경험한 연인들도 막상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옥신각신 다투기 일쑤다. 몇몇 연인들은 잦은 의견 충돌 끝에 파혼으로 치닫기도 한다. 특히 예비 신랑신부들은 결혼을 한두 달 앞두고 예단과 예물을 준비하는 시기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 신랑측 어머니가 신부 어머니에게 "딸을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 등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갈등을 겪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양가 어머니의 말이 그저 인사치레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경우, 예단을 준비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마음 상하기 십상이다.
신혼집을 마련하는 문제도 골칫거리다. 서울 도심 외곽의 전세 아파트라도 구하기 위해서는 2억원으로도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다. 주로 집 장만 책임을 맡은 남성들은 전세비용을 마련하느라 초조함을 느끼고 그 결과 연인 간, 집안 간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많은 예비부부들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파혼할 수도 있겠구나'란 위기감을 느끼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를 하더라도 양가는 서로가 준비한 혼수 및 예단·예물을 다른 집과 비교하며 심각한 갈등을 겪기 일쑤고,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신랑신부는 이른바 ‘미운털’이 박힌 채 힘겨운 결혼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이와 함께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결혼 준비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심상찮은 수준임을 짐작케 한다.
실제 한 결혼문화연구소가 최근 전국 신혼부부 380쌍에게 질문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약 3분의 1이 결혼 준비과정에서 갈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랑 측과 신부 측 양쪽이 모두 문제제기한 갈등항목은 ▲신혼집 마련(20.4%) ▲예단(14.6%) ▲예물(14.3%) 순이었다. 신랑 측이 문제제기한 항목은 신혼집 마련(22.0%), 예단(15.6%), 예물(13.5%) 순이었고 신부 측이 문제를 제기한 항목은 신혼집 마련(19.4%), 예물(14.9%), 예단(14.0%) 순이었다.
이처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서민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결혼비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10년 새 결혼비용이 2배 이상 급증했다"며 "어느 정도가 적절한 수준의 결혼비용인가에 대해서는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오늘날의 사회통념상 이 수준은 결코 적은 액수라고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체면을 중시하는 과시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며 "이만큼 사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자신의 부(富)를 과장되게 표현하려고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 관련업체들도 결혼비용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웨딩업체들은 결혼식이 일생에 단 1번뿐인 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고가의 이벤트와 물품을 판매하고, 이 같은 영업기법은 결혼적령기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에 힘입어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예식장 등 결혼 관련업체들은 탈세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 2009년 9월 국세청에 적발된 서울의 모 웨딩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웨딩홀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식 예약을 할 때 계약서상 하객 수를 실제보다 적게 기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악용, 계약서상 하객 수를 기준으로 수입금액을 세무서에 신고한 뒤 현금으로 받은 수입금액 중 초과 하객 수에 대한 수입금액 15억원을 탈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미 결혼을 한 기혼자들이 결혼 준비 중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 대표 웨딩컨설팅 ‘듀오웨드’에서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결혼 준비 만족도와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 결과 기혼자 70%는 ‘다시 결혼 준비를 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가장 축소하고 싶은 결혼 준비 품목은 예단(41.3%)과 예물(18.2%)을 꼽았다.
신혼부부 둘 중 하나는 작은 결혼식을 ‘실용적인 결혼식(55.8%)’이라고 인식했다. ▲‘의미있는 결혼식(31.6%)’ ▲‘선뜻하기 어려운 결혼식(10%)’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결혼식(2.6%)’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작은 결혼식에 적당한 비용은 약 2360만원(집값 제외)으로 집계됐다. 이는 실제 결혼 비용(6963만원)의 약 1/3 수준이다.
신혼부부가 가장 꺼리는 결혼 준비 품목은 예단(41.3%)과 예물(18.2%)로 나타났다. 이어 웨딩패키지(16.4%), 혼수용품(10.1%), 예식장(9.7%)이 꼽혔다. 반면, 신혼여행은 불과 0.8%만이 후회했다. 신혼부부들은 대체로 웨딩패키지와 예식장 등 예식 품목보다 예식 외 품목(예단·예물·혼수·신혼여행)을 줄이길 원했다.
예단과 예물은 실제 결혼 비용(6963만원)의 46.6%(3247만원)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은 예식장(22.9%), 웨딩패키지(4.3%), 혼수용품(19.7%), 신혼여행(6.5%)이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불필요한 결혼 절차를 축소, 생략하기 어려운 이유를 ‘고착화된 결혼 절차(45.8%)’와 ‘주변의 이목과 체면(33.6%)’때문이라고 답했다.
다시 결혼 준비를 할 경우 기혼자 10명 중 7명이 ‘비용을 최소로 하겠다’(70%)고 밝혀 결혼 비용 절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전과 비슷한 비용으로 준비하겠다(23.9%)’, ‘더 많은 비용으로 준비하겠다(6.1%)’는 의견도 있었다. ‘비용을 줄이겠다’는 의견은 성별뿐 아니라 연령·거주지·학력·연소득과 상관없이 과반이 넘었다.
박수경 듀오웨드 대표는 “결혼의 허례허식을 줄이는 것은 혼례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결혼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준비할 수 있는 진정한 자립 결혼”이라며“후회 없는 결혼이 되기 위해서는 남의 이목에 휩쓸리지 않는 소신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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