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금리인하 없을 듯…4월 경제전망 '변수'
사진=한국은행, 기획재정부 |
반면 단 한 번도 밟은 적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초저금리 1%시대는 그만큼 우리경제가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해 오히려 경제심리를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본회의를 개최하고 3월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00%에서 1.75%로 0.2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부터 금리조정을 통한 통화신용정책을 실시한 16년 동안 초유의 일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경제관계장관회의가 끝난 뒤 “금통위가 국내외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선제적 조치”라며 “저물가 기조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전일 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리인하를 단행해도 경기부양책으로서의 의미는 약할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려 2%대에서 1%대로 떨어졌을 때 오는 위기감이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현대경제연구원 |
지난해 7월 최 부총리를 중심으로 2기 경제팀이 출범한 이후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기재부는 예산기준 총지출 확대규모를 지난해 6조8000억원에서 올해 19조6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확장 편성했고, 지난 한 해에만 46조원 정책패키지 중 31조원을 투입했다. 잔여분 15조원에서 올해 쓰기로 한 10조원은 상반기 내 모두 집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과 10월 이미 두 번씩이나 기준금리도 낮췄고, 특히 8월에는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마저 풀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총 4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2·26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 7·24 주택시장 정상화 방안, 9·1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 10·30 서민주거비 부담 완화대책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경제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되레 디플레이션 공포만 커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다.
경제학자 낵과 키퍼(Knack and Keefer·1997)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국가 신뢰지수가 10% 하락할 때마다 경제성장률은 0.8%씩 감소한다. 공공부문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지난 2013년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 중 55점으로, 전 세계 177개국 가운데 46위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39위보다 7단계나 급락한 순위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의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부패지수는 7.0점인 데 반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4.7점으로 OECD 평균에 비해 2.3점 높다. 10점 만점으로 0점이 가장 부패한 수준이며 점수가 낮을수록 부패지수가 높다는 의미다.
우리나라가 각종 법·제도 개선 등 부패방지 노력을 통해 국가 청렴도를 제고시켜 OECD국가 평균에만 도달해도 연평균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38.5달러, 경제성장률은 명목기준으로 연평균 0.65%포인트 각각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부패지수는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러 경제성장 동력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국가는 부정부패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과 단호한 처벌사례를 적극 보여주고, 사회지도층에 대한 철저한 감시활동을 통해 부정부패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전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장전입·다운계약서·병역기피 등 온갖 탈법행위를 통한 반칙으로 출세해 사회지도층에 오른 인사가 국가적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고통분담을 요청한들 국민적 참여를 이끌 명분이 없다는 얘기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 급락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공산이 거의 없는 데다 저금리로 현금보유에 대한 기회비용이 대폭 줄어들었고 고액권인 5만원 신권 발행으로 현금소지가 간편해지면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곳간과 금고에 현찰을 쌓아둔 까닭에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현상도 모두가 자기 살 길만 찾고 있다는 것이다.
부패지수는 세계은행·프리덤하우스·IMD·세계경제포럼 등 각 기관들이 기업인과 전문가들에게 실시한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청렴도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산출. 10점 만점으로 0점이 가장 부패한 수준임. 사진=현대경제연구원 |
법조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을 두고 벌이는 논란만 봐도 우리나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며 “대상자만 2200만명을 넘는다는 비판에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내법이 당연히 전 국민이 대상자인데, 그렇다면 5000만명에게 살인·강도·절도 등 범죄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도 무리한 요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자전거를 찾아주고 음료수를 얻어먹은 경찰에 대해 음료수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핀란드의 경우 같은 상황에서 음료수를 먹은 경찰이 벌금형을 받았다. 또 지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받은 독일의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퇴한 바 있다. 부패인식지수에서 핀란드는 89점으로 세계 3위, 독일은 12위다.
유미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위대한 행동이라는 것은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행한 작은 행동들이 있을 뿐이다’는 테레사 수녀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위대한 사랑으로 행하는 작은 행동’, 즉 진정성이 담긴 디테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성장기 후반, 성숙기에 처한, 차별화가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공적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지 못하면 정부정책의 효율적 전달이 이뤄질 수 없다”며 “공공서비스의 향상, 공공부문의 부패근절, 공기업 부채절감 등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을 통해 공적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가계대출 구조개선 프로그램 체계도. 자료=금융위원회 |
이날 있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재계는 즉각 호응했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재정금융팀장은 “최근 일본·유로존·중국 등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양적완화, 금리인하를 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절상돼 수출경쟁력에 타격이 있었지만, 이번 금리인하로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홍 팀장은 이어 “금리인하로 민간소비가 진작되고 국내 경기활성화에도 긍정적일 것이며, 근래 저물가 지속에 대한 염려가 높았는데 이번 조치로 디플레이션 논쟁 확산을 선결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1089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올 들어서도 부동산 매매수요와 맞물려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이 정부의 성장 논리에 밀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 공조를 위해 역대 초저금리인 1%대로 기준금리를 낮추자,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이례적으로 즉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후속대책을 내놨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한은, 금융감독원 등은 가계부채에 대한 현황과 인식을 공유하고 안정적 관리방안을 공동 모색해 나가고자 ‘가계부채 관리협의체’를 구성·운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협의체는 가계부채의 거시경제적 영향, 질적 구조, 건전성, 상환능력 등 다각적 차원의 접근을 해 나갈 방침”이라며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미시적·부분적 분석 및 관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상가·토지담보대출 등 제2금융권 비주택대출 관리 강화 ▲대출구조 개선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금융권 심사관행 개선 등을 중점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예상보다 다소 이른 시점인 3월에 금리를 인하한 배경에는 2월말까지 확인된 지표가 부진해 1분기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 디플레이션 우려, 환율부담, 가계부채 구조전환을 위한 정책 공조 등이 종합적으로 있었다”고 말했다. 서 연구원은 “시기를 늦출수록 이번의 금리인하가 지난해의 연장선상보다는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으로 해석될 수 있어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평가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통화정책방향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현(現) 금리수준이 실물경제를 제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으나, 이번에는 “실물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한 만큼 추가적으로 경제지표 악화가 가시화되지 않는 한 금리인하 결정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현재 한은의 경기흐름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이며, 어느 강도로 진행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4월 수정경제전망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경제학박사)은 “3월 금통위는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으나, 소수의견 2명이 존재할 정도로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추가 금리인하 여부는 4월에 발표되는 수정 경제전망치의 달성 여부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시기와 속도 그리고 가계부채의 안정여부에 달려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세계파이낸스>세계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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