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후 좌우익 싸움을 통과해 참혹한 6·25전쟁을 겪은 후 부산에서 언론인으로 복무하다 필화사건까지 감당해야 했던 당대의 지식인 나림 이병주(1921∼1992). 그는 소설을 통해 자신의 견문과 사상을 폭넓게 펼치다 간 흔치 않은 문인이었다. ‘관부연락선’ ‘지리산’ 같은 역사적 배경을 진중하게 담은 작품들로 시대의 화두를 제시했지만 그에게는 대중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이번에 열린 세미나는 그가 남긴 작품들의 대중성의 실체를 분석하는 작업이 우선이었지만, 더불어 작금 한국문학의 대중성을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정미진 경상대 교수는 ‘이병주 소설의 영상화와 대중성의 문제’를 통해 영화와 TV문학관 등으로 영상화된 작품들의 의미를 분석했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병주 소설의 통속성에 대한 고찰’에서 이병주 소설은 후기의 것뿐 아니라 역사의식이 내재된 초기소설도 통속성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그 작품들의 매력이 값싼 자극이나 도피적 위안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을 가차 없이 해부하는 일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초기소설인 ‘관부연락선’까지도 “지식인은 행동하며 느끼는 자아와 그 자아를 관찰하는 자아가 병존한다”는 개념을 내세워 주인공을 해부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미화하는 통속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교수도 ‘관념의 유희와 소설의 자리’에서 이병주의 세태소설 ‘행복어사전’이 “소설가 지망생 서재필을 내세운 이병주가 소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갈피를 잡지 않고 떠돌았다”고 분석했다.
반론도 이어졌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는 토론 시간에 “이병주는 현대사에서 누구보다 큰 스펙트럼을 가진 작가였다”면서 “내면 해부에 초점을 맞춰 통속성을 재단하는 것이 적당한지” 물었다. 5·16 이후 필화로 2년 넘게 복역해야 했던 트라우마도 대중성 뒤에 숨은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날 열띤 토론이 이어진 이 세미나는 갈수록 문학 독자들이 줄어든다는 걱정이 어느 때보다 깊은 이즈음, 지식인은 물론 대중 독자까지 사로잡았던 이병주 문학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하동=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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