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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간의 일기에 담긴 인간 이오덕의 삶과 죽음

입력 : 2015-04-24 21:08:40 수정 : 2015-04-27 17: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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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한 평생처럼 살았으니…
이제 조용히 기쁘게 떠나오”
이오덕 지음/양철북/1만3000원
나는 땅이 될 것이다/이오덕 지음/양철북/1만3000원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또 다른 한평생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또 한평생을 살았으니 그것을 대강이나마 적는다.”

2003년 8월19일 화요일 이오덕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이날로부터 닷새 전 암 선고를 받았고, 엿새 후 세상을 떠났다. 말 그대로 소중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 의연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한 것에 나도 놀랐다. 정말 이제 조용히 기쁘게 저승을 가게 되었다”고 썼다. 죽음을 앞두고, 그것을 기쁘게 맞겠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오덕은 42년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책은 일기 중 일부를 뽑아 엮었다. 앞서 5권으로 나와 있던 것을 1권으로 줄여 읽는 부담을 줄였지만 교사로서, 교육사상가로서, 그리고 우리말 운동가로서 생전에 이오덕이 가졌던 신념과 실천,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 안에 하루를 한평생처럼 살다 기쁘게 저승으로 떠난 한 인간이 있다.

교사가 업이었던 이오덕에게 바른 교육은 평생의 화두였다. 일기에는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느꼈던 당대의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매섭다. 1962년 9월19일, 그는 아이들에게 “선생질은 제발 하지 마라”고 말했다. ‘대구 종합운동장 확장 기금’을 내지 않은 아이들을 독촉한 뒤였다. “지시, 명령만의 질서와 체제에서는 아이들이…노예처럼 길드는 동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강압적인 교육에 대한 엄중한 비판이다. 그리고는 “대관절 선생님들의 태도가 잘못되어 있다. 아이들과 같이할 줄 모른다…난 선생이니 명령만 하면 된다…이런 태도니 교육이 되겠는가”라고 질책했다. 강압적 교육을 혐오했던 이오덕은 아이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1970년 4월24일의 일기다.

“거짓말 글짓기를 시켰다.…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을 ‘거짓말’이란 것으로 쓰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아이들의 거짓말은 또 다른 참말이다.”

이런 내용에 눈길이 가는 것은 50여년 전 그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학교의 어딘가를 떠올리게 되고, 여전히 유용한 교육 현장의 지향점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일기에 “이제 조용히 기쁘게 저승에 가게 되었다”고 적었다. 하루하루를 한평생처럼 치열하게 살다간 이의 자신감이다. 사진들은 이오덕의 생존 당시 모습.
양철북 제공
이오덕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응시했고, 맞서 싸웠다. 하지만 무력함에 스스로 치를 떨 때도 있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그는 비밀리에 나돌던 인쇄물을 읽고 광주의 참상을 접했다. 그해 6월1일,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찔러 죽이고 쏘아 죽였다”는 인쇄물을 읽고 난 뒤에는 그는 시를 지어 “…그래도 먹고살겠다고/좁쌀이며 감자를 사 가지고 차를 타고 온 나는 사람인가, 짐승인가”라고 자책했다.

교육 현장과 사회를 성찰한 내용이 두드러지지만,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1989년 6월8일 아침, 셔츠를 빨고 내내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여자들이 오래 사는 것은 바로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참 엉뚱한 생각이지만 이건 재미있는 시적인 생각이라, 시를 한 편 써보고 싶었다. ‘빨래’란 제목으로.”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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