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원 조사 중단… 시민단체만 작업
최근 일부 지자체 위령 사업 추진 ‘물꼬’ 한국 현대사에서도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크고 작은 학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반세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진실 규명과 보상 작업은 미완성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이 군인과 경찰, 북한 인민군 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경남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이 6·25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례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밝힌 두 사건의 희생자는 각각 4934명, 719명이다.
통계청 전신인 공보처 통계국은 1953년 7월27일을 기준으로 6·25전쟁 당시 인민군과 좌익 세력이 12만8936명을 학살했다고 집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12월 활동을 종료한 과거사위는 4년 2개월간 이들 사건이 포함된 1만1175건을 신청받아 75.6%인 8450건에 진실규명 결정(조사가 종료돼 진실규명이 된 경우)을 내렸으며, 528건(4.7%)은 진실규명 불능, 1729건(15.5%)은 각하 처리했다.
지금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과거사 정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쟁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은 지난해 2월과 올해 2월 각각 경남 진주와 대전에서 2차례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해 약 70구를 발굴했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없다. 이들은 각각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와 1950년 집단 처형된 대전형무소 수감자들로 추정될 뿐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시민단체 분담금과 시민 후원금,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순수 민간 차원에서 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예산이나 규모가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대전 유해 발굴 작업은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김 연구원은 “과거사위가 문을 닫으며 정부에 유해 발굴 사업을 계속할 것을 권고했으나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 책임을 묻고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유해를 수습해 유족들의 한을 달래주기 위한 작업을 멈출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3월 대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대전광역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등 지원조례안’을 원안 가결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6·25전쟁 때 숨진 민간인들에 대한 위령 사업을 할 수 있는 물꼬가 트인 셈이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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