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작가 의도 존중 예술로 판단” 황당 해명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학원 가기 싫은 날’ 중)
초등학생이 펴낸 동시집이 폭력성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내용과 삽화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이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지만 출판사는 어린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가감 없이 실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출간된 이모(10)양의 동시집 ‘솔로강아지’ 수록작인 ‘학원 가기 싫은 날’에는 여자아이가 쓰러진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 옆에서 입가에 피를 묻히고 심장을 먹고 있는 삽화가 곁들여져 있다. 이 책의 주 독자층은 초등학생들이다.
동시집 ‘솔로강아지’ 중 ‘학원 가기 싫은 날’ |
학부모와 교사들은 우려를 표했다. 강모(33·여)씨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읽히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잘라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학부모인 김모(35)씨는 “학부모 상담을 위해 학교를 찾았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상어로 묘사한 아들의 그림을 보여준 적이 있다”며 “그때도 실망감이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묘사할 정도라면 미디어를 끊고 시골로 이사라도 가야 하나 싶다”고 허탈해 했다.
성인 그림책 작가가 그린 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28·여)씨는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 같다”며 “시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삽화를 누가 그렸는지 궁금하다. 어른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이렇게 자극적으로 출간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또래 학생들은 “무섭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모(13)군은 “그림을 보고 소름이 돋았지만 내용은 공감이 된다”며 “얼마나 학원에 가기 싫었으면 저런 글을 썼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모(12)양은 “학원을 수십 군데씩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나도 학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자유가 없는 아이들. 세계일보 자료 |
출판사 측은 “작가의 의도를 존중했으며, 예술로서 발표의 장이 확보돼야 한다는 판단으로 출간했다”고 말했다. “성인 동시작가가 어린이를 위해 썼다면 출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 역시 동시작가이고, 성인이 동시를 쓸 때는 예술성과 함께 교육성도 생각한다”고 운을 뗀 출판사의 김숙분 발행인은 “어린이가 자기의 이야기를 쓴 책이기 때문에 가감 없이 출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간 전 이 시에 대해 ‘독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지만 작가인 이양이 이를 매우 섭섭하게 생각했다”며 “시집에 실린 모든 작품에 조금도 수정을 가하지 않았고, 여기에 실린 시들은 섬뜩하지만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발행인은 삽화에 대해서도 “글이 작가의 고유한 영역인 만큼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자기의 영역이 있다고 판단해 존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책이 작가를 떠나면 독자의 몫이고, 독자들이 비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것을 보고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발견하고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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