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게이브리얼 지음/천태화 옮김/모요사/4만2000원 |
사회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런 만큼 카를 마르크스 사상을 다룬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마르크스에 관한 출판물이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 하나인 ‘사랑과 자본’은 마르크스와 그의 가족사를 담은 책이다. 2011년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논픽션 부문 최종작으로 선정됐다. 수만권의 책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미국에서 그해 가장 잘 쓴 책 다섯 권 안에 들었다. 2012년에는 퓰리처상 전기 부문 최종작으로 선정됐다.
한 외신 기자를 지낸 메리 게이브리얼은 ‘사랑과 자본’을 쓰는 데 8년여의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마르크스와 그 가족의 흔적을 샅샅이 뒤져 책을 완성했다. 책은 마르크스가 왜 다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노벨 문학상(1925)을 받은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마르크스를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는 세상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마르크스가 1846년부터 집필에 들어가 ‘자본론’ 제1권을 출간한 1867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자본주의 맹점을 간파하고 대안으로 자본론을 썼다.
카를 마르크스(뒷줄 왼쪽)가 1864년 세 딸, 그리고 평생의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뒷줄 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모요사 제공 |
99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사랑과 자본’에서는 마르크스라는 인간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책은 죽었지만 죽지 못하고 유령처럼 지상을 떠돌던 마르크스 사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살이 있고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인간 마르크스를 묘사한다.
마르크스 아내 예니의 1836년 모습을 그린 초상화. |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는 프로이센 남작의 딸로 미모와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귀족의 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은식기부터 고급 신발까지 세간살이를 들고 전당포를 전전했다. 마르크스의 아이들이 노는 공간은 항상 망명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귀는 혁명의 단어들로 채워졌다. 자본론은 그런 환경에서 쓰여졌다. 외골수 남자와 그를 가장으로 둔 한 가족의 신산한 삶을 대가로 탄생한 게 자본론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독일 본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마르크스의 초상화. |
저자는 마르크스의 가족사를 통해 그의 진면목을 온전히 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예니는 단순한 여염집 아내가 아니라 사실상 자본론의 제2 저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지독한 악필을 읽을 수 있는 문자로 옮겨 적을 정도로 경제학적 지식을 갖춘 여성이었다.
책에서는 자본론을 써놓고 담뱃값도 안 될 것이라고 툴툴거렸던 마르크스와 어린 아들의 시신을 옆에 놓고서도 자본론 집필에 몰두했던 지독한 아빠로서의 마르크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마르크스의 특별함을 칭송하기보다는 그를 시대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해석한다. 마르크스 가족에게 평생 따라다녔던 가난과 박해, 자녀들의 사망 등을 자료를 통해 고증했다. 2018년은 마르크스가 태어난 지 200년 되는 해다. 그가 출생한 독일 트리어에서는 2012년부터 마르크스 유품 전시회가 연중 무휴로 열리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한계를 노출하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 바람’이 다시 불 조짐도 엿보인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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