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낸 이혜훈 전 의원이 ‘유 열사 공적 제대로 알리기’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2월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 21대 회장에 취임했다. 1947년 기념사업회가 설립된 이후 여성이 회장에 선임된 것은 68년 만에 처음이다. 부친 고향이 충북 제천이라 ‘충청의 딸’이라 불리는 이 회장이 2년 전부터 기념사업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정치권 내에서 대표적인 ‘경제통’으로 활약한 그간의 경력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 이혜훈 회장이 12일 서울 중구 장교동에 위치한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며 저평가된 유 열사 공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이 회장은 “유 열사는 단순히 3·1운동에 가담한 수준이 아니라 3·1운동 때 탑골공원에서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고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천안에서 3000여명을 모아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게 도화선이 돼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며 “심지어 일제가 재판과정에서 유 열사의 저항이 가장 극악하다고 해 최고 중형인 5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유 열사의 공적을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항일독립운동을 가르치겠냐”고 반문했다. 다행히 기념사업회,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나머지 4종 교과서에도 유 열사 이름이 들어가는 등 수정 조치가 이뤄졌다. 이 회장은 그러나 “이름을 기술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며 “행적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미래 세대가 애국이 뭔지, 우리나라가 건국되기까지 어떤 값진 희생이 있었는지 알지 않겠느냐. 그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인터뷰 내내 유 열사의 공적이 왜곡되고 과소평가돼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유 열사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해 한 교수가 ‘유 열사는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주장해 소란이 벌어진 일을 꼽았다. 해당 교수는 발언 이틀 만에 기념사업회 측에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러나 사과 사실에 대한 보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 인터넷상에는 관련 내용이 사실인 양 떠돌아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이 회장은 “게시물을 내리기 위해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려 해도 제3자인 기념사업회는 법적 자격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한다”며 “변호사를 통해 해야 하는데 회원 회비로 운영되는 기념사업회 특성상 재정적으로도 쉽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문제도 바로잡아야 할 문제로 지적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항일독립투쟁의 성지인데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에 대해선 건물 2채에 걸쳐 홍보 전시를 하는 반면 3·1운동에 대한 설명은 고작 7줄에 불과하고 본관엔 유 열사 이름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구 관할인데, 2010년 야당 소속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현재의 상태로 바뀌었다고 한다”며 “순국열사에 대한 시설물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구청장이 바뀔 때마다 시설물이 바뀌는 건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올해 유 열사 추모제 때 대통령 헌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962년 독립운동가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이 이뤄졌을 당시 다른 3·1운동 관련 인사는 1, 2등급을 받았으나 유 열사는 가장 낮은 3등급을 받았다. 이에 따라 매년 9월 천안에서 열리는 유 열사 추모제는 대통령 명의의 헌화를 받지 못한다. 이 회장은 “국가보훈처에 훈격을 조정해달라는 민원을 냈지만 유 열사만 올려주면 민원이 봇물 터져 곤란하다고만 변명한다”며 “그러면 대통령 헌화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꽃값을 이유로 안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 헌화만 와도 행사의 상징성이 달라진다. 여성 대통령 시대인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할 적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채연 기자 w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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