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주 드 프랑스는 1530년 설립된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 당대 최고 학자로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다. 미셸 푸코, 롤랑 바르트, 피에르 부르디외 등의 학자들이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이곳도 재단에 지원을 요청했다. 신청액은 43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520만원이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이다.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기관이 이만 한 돈이 아쉬워서 손을 벌렸나 싶어서다. 이들 기관이 지원을 요구한 건 자기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때문이다. 훼손된 ‘한국산’ 소장품의 보존처리와 보관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말의 곽분양행락도 병풍. 미술관은 병풍의 종이 손상과 변색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지원을 요청했다. 필라델피아미술관 제공 |
위 내용은 재단이 실시하는 ‘2015년도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사업’의 일부다.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보존을 지원하고, 현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연구소)에서 주관했다.
올해는 필라델피아미술관, 콜레주 드 프랑스를 포함해 5개국 11개 기관이 지원을 신청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은 조중묵의 1883년작 ‘미인도’와 갑옷 및 투구 보존처리를 위해, 미국 오리건주의 조던슈나이처미술관은 ‘구선도’(거북선을 비롯한 70여척의 배를 그려넣은 조선시대 해상 군사훈련 그림)의 구김, 얼룩, 마모 등의 손상처리를 위해 응모했다.
2005년 러시아 표트르대제인류학민족학박물관의 지원 요청을 받은 고려시대 청동정병의 보존처리 전(왼쪽 사진)과 후의 모습. 청동정병은 고려 금속공예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
보존·복원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외소재 문화재의 훼손 상태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해당 기관의 보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봐야 한다. 연구소 이난영 실장은 “기관마다 편차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관 수준은 괜찮은 편”이라며 “보존처리를 요청한 기관은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 있고, 전시회 개최 등을 통한 활용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해학반도도 병풍’ |
전문가들은 한국 문화재의 위상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큐레이터를 지낸 서울시립미술관의 선승혜 학예연구부장은 “해당 기관의 자체 예산을 쓰려고 해도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국, 일본 문화재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사실이다. 해외에는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수리할 만한 기술, 인력도 부족하다”고 밝혔다.
일본은 영국 브리티시뮤지엄과 미국 프리어새클러 갤러리에 도쿄예술학교 학장을 지낸 히라야마 이쿠오의 이름을 딴 ‘히라야마 스튜디오’와 ‘히라야마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스튜디오는 브리티시뮤지엄이 소장한 5000여점의 일본 문화재의 보존처리를 관할하고, 프로그램은 일본 미술품 보존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재단 오수동 사무총장은 “해외에 우리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다룰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지만 현 상황에서는 장기 과제로 둘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면서 “예산이 좀 더 배정될 필요가 있고, 민간에서도 관심을 좀 더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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