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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말로만 ‘문화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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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01 20:55:20 수정 : 2015-06-11 14: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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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저조한 건 언론책임도 커
문화·예술 위주로 보도행태 바뀌어야
문화창조를 통한 문화융성이 21세기 우리의 살길이라고들 한다. 문화창조에 힘을 기울이라고 언론들은 연일 목이 멘다. 문화융성위원회는 무얼 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문화창조, 문화융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크고 그것을 위해 단체나 조직도 수없이 많은데 문화창조는 잘 안 되고 있다는 목소리 또한 작지 않다.

왜 그럴까? 필자는 언론에 문제가 있고 언론의 책임이라고 감히 단도직입적으로 밝히고 싶다. 도대체 언론의 주요 간부나 책임자, 혹은 일선 기자들도 문화에 대한 애정, 아니 인식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5월1일에 개막해서 10월 말까지 6개월 동안 열리는 엑스포 문제다. 이번 엑스포의 주제가 ‘지구 식량 공급, 생명의 에너지’(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여서 우리나라에서도 ‘한식, 미래를 향한 제안: 음식이 곧 생명이다’를 주제로 한국관을 열고 전시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러한 개막소식이 전혀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1993년에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고 2012년에는 여수에서 해양엑스포를 개최하기도 한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전시이벤트 행사에 대한 관심도 높고 더구나 우리가 늘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한식을 참가국인 145개 나라뿐 아니라 수천만 명의 관람객들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이기에 한국관을 어떻게 짓고 어떤 준비를 했으며 다른 나라의 전시관과 비교해 보여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개막전 소식도 주요 언론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은 데다 기껏 엑스포 반대 시위 소식만을 전할 뿐이어서 어떤 것들이 전시되었는지, 그것이 잘 되었는지 잘못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우리 뉴스에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는 느낌이다. 이래서 문화창조가 되겠는가?

물론 언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부당국도 준비하는 데 약간의 차질이 있었다. 통상적으로 엑스포 준비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몫이었기에 이번 밀라노의 한국관 전시도 ‘한식세계화’라는 테마를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경험했듯이 산업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예산을 상당히 쓰고도 진척이 잘 안 되더라는 것이다. 전시는 산업이지만 음식은 문화이기에 문화로 접근해야 했던 것이다. 결국 개막 6개월도 안 남긴 지난해 11월에 산자부 대신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전시행사를 맡게 되었고 그만큼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홍보가 미진해서 각 언론사들의 대응이 늦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엑스포 전시장 한국관을 소개하는 일부 기사들을 보니 전시관 외형을 거대한 달항아리로 형상화했고 특히 전시관 바닥에 수많은 항아리를 설치한 작품이 단연 눈에 띈다. 일 년을 상징하는 365개 항아리는 땅과 접하고 있고 각각의 항아리 구연부에는 사계절의 영상과 한식의 숙성 과정이 비디오 아트 방식으로 보여지고 있다. 전체적인 배열방식은 과거 백남준 선생이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300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옆으로 줄을 지어 눕히고 프랑스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비춰주던 작품을 연상케 한다. 관람객들에게 한식의 건강함을 연상하게 하고 이를 느끼도록 보여주는 방법이 문화적, 예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1세기는 모든 것이 다 문화다’라는 명제에 맞춘 개념이라고 하겠다.

세계에서 크게 성공한 일본 음식점 중에 ‘노부’라는 것이 있다. 필자가 런던에 있을 때 보니 음식은 나오는 양이 정말 소량이고 맵시, 볼거리, 그리고 미학적인 배열로 해서 영국인들의 대대적인 호응을 얻는 것을 보았다. 그때까지 우리의 한식을 내는 방식이 가짓수 위주에다 단순 나열 형식이었다면 그때 노부의 음식 내는 법은 일종의 패션쇼를 보는 느낌이었다. 음식도 문화와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지난 2000년 10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이탈리아 언론들은 여왕의 방문을 톱뉴스로 전하면서 여왕이 들고 간 핸드백, 구두, 드레스, 코트 등 옷차림에서부터 음식까지를 철저히 해부하고 그 장점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런 열정이 패션의 나라, 멋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힘인 것이다.

언론의 책임을 지적한 것은, 이제 정치나 경제, 사건 위주로 보도하던 언론의 보도행태도 21세기에는 이 시대의 화두인 문화, 여가, 창조, 인간적인 생활 위주로 바뀌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뉴스에 대한 가치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밀라노 음식엑스포가 열리면, 거기서 얼마든지 세계 각국의 아이디어 경연을 볼 수 있고 음식과 철학, 음식과 예술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주요 사건 현장에 특파원을 보내듯이 이러한 현장에 특파원들이 대거 가서 전 세계인들의 문화의 전쟁, 생활의 전쟁을 유심히 보고 이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알려야 한다. 스마트폰 신제품 발표회가 열리면 미국이건 어디건 열심히 쫓아가지만 그동안 우리의 기능이나 디자인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은, 인간에 대한 생각과 고려, 사람들의 편함에 대한 고려,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정치, 경제, 사건 이런 곳만 따라다니다 보면 그만큼 나쁜 면을 조장하는 역기능이 우려된다.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 표현력, 창조력, 이런 것들은 문화에 대한 우선순위가 올라가지 않으면 피어날 수 없다. 뉴스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평가가 달라지지 않으면 문화 창조는 정말로 가기가 쉽지 않은 험한 오솔길이 될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소창다명(小窓多明)’이란 추사 김정희의 글귀에 나오는 말로 ‘ 작지만 밝은 창’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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