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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사람] '명경지수'의 정원서 만난 새… 고단한 삶을 위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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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5 19:51:33 수정 : 2015-06-15 21: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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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까지 개인전 여는 조각가 이영학
전시장에 사찰이나 한옥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물확(돌에 홈을 파서 물을 담아두는 것)이 널려져 있다.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푸른 이끼가 무성하다. 전시장 관리자가 정원을 가꾸듯 하루에 서너 번씩 물을 채우고 뿌린다. 그래도 건조한 날씨 탓인지 이끼 일부가 말라 죽었다. 조각가 이영학(66)의 전시장 풍경이다. 언뜻 보면 실내조경 전시회 같은 분위기다. “돌을 쪼아 물확을 만들고 이끼를 키우는 데 10년이 걸린 작품들입니다. 생태환경에 민감한 이끼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고 있네요.” 그가 안타까운 듯 전시장 관리자에게 이끼 생태에 대해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물확에 낀 이끼도 작품이기에 명화전시 못지않은 습도조절이 급선무다. “제게 물확은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세계입니다.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 같이 티없이 맑고 고요한 세계지요.” 그가 명상에 잠긴 듯 물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물확에 시선을 주면 마음이 절로 조용해지지요.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입니다.”

물확 작품 사이로 들어앉은 이영학 작가. 그가 돌과 무쇠를 만지는 데 가장 중시하는 것은 최소한의 손길만 준 뒤 멈춰야 할 때 딱 멈추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미니멀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그에게 물확은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하는 명상으로 이끄는 도구인 셈이다. 작가에게도 그동안 살아 온 인생만큼 많은 일들이 스쳐갔다. 누구나 삶은 파란만장하다 하지 않는가. 그가 요즘 부쩍 물확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이 집중되니, 마음이 잔잔하다. 다름 아닌 명경지수의 모습이다.

“질박한 물확에 담긴 물에 푸른 이끼가 초록물을 들이고, 그 위로 꽃잎이 내려 앉으면 고요한 아름다움에 도취될 수밖에 없어요. 어느새 세상 근심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리지요.”

그래서 물확이 있는 공간엔 삶의 여유와 마음의 평화가 있다. 사찰의 스님과 한옥의 선비들이 물확을 가까이 한 이유다. 힐링스페이스가 되는 것이다.

“물확은 거처 공간과 자연의 소통 매개체입니다. 마치 제가 물확을 통해 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것과 같은 역할이지요.”

그는 물확을 일본 정원의 개념처럼 자연을 가두는 도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가 물확을 만드는 것은 연금술사 같은 일이지요. 브라질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연금술사가 소설속 주인공인 산티아고에 전하는 말이 가슴에 조각처럼 새겨졌습니다.”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그는 예술이 이 시대의 연금술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화강석을 부분적으로 자르거나 파내어 만드는 물학이 그렇듯, 그는 녹슨 농기구 쇠붙이로 새 조형작업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낯설지 않아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작품들이다. 농기구의 변신에 해학과 재치가 넘친다.

“예로부터 새는 지상과 천상의 매개체로 여겨졌던 동물입니다. 자유와 꿈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새를 통해 농기구와 함께 했던 이들을 위무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고단한 인생살이에 대한 변론을 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조각은 낫이나 쇠스랑, 부엌칼 등 우리에게 가깝고 친숙한 삶 주변의 무쇠 연장을 오브제로 하고 있다. 세월과 함께 쌓인 녹은 토속적이고 원초적이기까지 하다.

“부지런한 농부를 따라 넓은 땅을 일구다가 닳고 기력이 다해서 쉬고 있던 농기구, 억센 근육을 지닌 대장장이가 쇠를 내리쳐 모양 좋은 연장으로 만들던 망치, 알뜰하고 솜씨 좋은 아낙이 사용하던 부엌 살림도구 등 우리 국토 구석구석과 갑남을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무쇠 연장들입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이 자유와 꿈으로 결실됐음을 증언해 주고자 했습니다.”
녹슨 농기구 쇠붙이로 만든 ‘새’ 시리즈

그는 녹슨 농기구에서 우리네 삶을 보았다. 농기구로 새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삶에 대한 찬가다. 바람이자 기원이기도 하다.

소설 ‘연금술사’ 속으로 다시 가 보자.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 양치기 산티아고에게 ‘자아의 신화’를 찾는 모험을 떠나라고 충고하는 대목이다.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멜기세덱의 메시지는 이 세상의 위대한 진실, 그것은 바로 누군가 온 마음을 다해 바란다면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절실히 소망하는 마음은 곧 우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의 작품은 ‘염원의 부적’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생전에 소설가 박완서도 그의 수유동 작업실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박완서 선생이 건넨 연탄 집게와 식칼도 새가 됐다. 박완서는 이영학의 작품에 대해 긴 글도 남겼다. 새가 된 것은 식칼과 연탄 집게뿐은 아니다. 처녀들이 대처로 도망칠 때 밭고랑에 내던진, 혹은 만삭의 아낙이 김을 매다가 그 자리에서 몸을 풀기 위해 힘 없이 놓친 호미도, 기역 자도 모르는 무지랭이의 일생 동반자였던 낫도, 밤새워 등잔불을 돋우고 바느질을 해야 했던 상봉하솔의 고단한 며느리에게 입에 혀처럼 순종했던 인두와 가위도, 울컥울컥 지하수를 토해내던 펌프 주둥이도, 노련한 미장이 솜씨에 의해 진흙 반죽을 길이 잘 든 장판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주던 흙손도, 대목이 잘 다듬은 나뭇결에 정확하게 대못을 박던 장도리도, 쓰임새에 따라 섬세하게 모양을 달리하던 쇠스랑도, 기둥과 문짝 사이에 끼어서 생전 햇빛을 못 보던 돌쩌귀도 모두모두 새가 되었다.

왜 하필 새였을까. 박완서는 그건 이영학이 그 도구들로 상징되는 고단한 삶을 위무하고 자유와 해방으로 보상하려는 제의 같은 것이라 했다. 새가 된 도구들은 닳고 녹슨 것들뿐이다. 새것은 하나도 없다.

“어디에도 끼지 못한 하찮고 낡은 것이라도 삶의 강을 건넌 모든 이들은 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육체노동 그 신성한 고통을 아는 이들은 자유로운 새로 날 자격이 있습니다.”

새는 본래 아름다운 유선형의 자태와, 명랑하고 때로는 구슬프게도 들리는 울음을 지니고 있다. 이는 광대무변한 시공간 속에서도 생명이 박동하며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며 노래이고 상징이다.

“‘새’ 작품들이 때론 우리의 우울과 망각의 시간들을 문득 깨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아늑하고 우아하고 신비한 날갯짓과 울음소리를 들려주기를 기대합니다.” ‘명상 조각’의 추구라는 얘기다. 28일까지 사간동 현대화랑 개인전.

글·사진=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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