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달팽이’라고 불리는 군소(sea hare)의 알과 내장이 독성 간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의료계에서 나왔다.
15일 사단법인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동국대 의대 경주병원 소화기내과 서정일 교수팀은 군소의 내장과 알 등을 섭취한 4명이 독성 간염에 걸린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군소 섭취 후 발생한 독성 간염 4예)는 ‘대한내과학회지’ 최근호(2015년88권6호)에 소개됐다.
독성 간염(毒性 肝炎, toxic hepatitis)은 독성 물질(식품ㆍ한약ㆍ양약ㆍ건강기능식품 등)에 노출된 간에 염증이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
해조류를 먹고 사는 군소는 바다 연체동물로, 국내에선 남해안ㆍ동해안ㆍ제주도 등의 얕은 수심에서 흔히 발견된다. 독특한 향과 식감을 지녀 해안가 주민들에겐 인기 있는 해산물이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선 제사상에 오르기도 한다.
연구논문에 따르면 50세 남성은 병원을 찾기 5일 전에 군소 회와 내장을 섭취했다. 황달ㆍ구토ㆍ설사ㆍ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큰 병원으로 옮겼다. 이 환자는 거의 매일 2홉들이 소주 1병을 마시는 음주 경력을 갖고 있었지만 복부 초음파 검사에선 가벼운 지방간(脂肪肝)만 확인됐다.
서 교수팀은 논문에서 “환자 입원 후 실시한 바이러스 항체 검사와 자가 면역 항체 검사에서 특이한 소견을 보이지 않아 독성 간염 등 다른 종류의 간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간 조직검사를 실시했다”며 “간세포가 상당수 죽고 풍선 모양으로 변형돼 있어 독성 간염으로 진단됐다”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이 환자에게 안정을 취하게 하고 보조 치료를 실시했다. 입원 3일 후엔 구토ㆍ설사 증상이 사라졌고 입원 7일 후엔 간 기능 검사에서 간 건강을 나타내는 ALT 등 각종 수치들이 호전돼 퇴원했다.
또 69세 여성 환자는 병원에 오기 하루 전에 삶은 군소를 먹은 뒤 구토ㆍ복통 증세를 보였고, 39세 남성 환자는 병원 방문 5일 전에 군소 알 섭취 뒤 황달ㆍ구토ㆍ복통 증세를 호소했다. 59세 여성 환자는 병원을 찾기 10일 전에 삶은 군소를 먹었다.
서 교수팀은 논문에서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군소의 내장과 알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채 먹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군소엔 디아실헥사디실글리세롤과 아플리시아닌이란 독성 성분이 들어 있다. 디아실헥사디실글리세롤은 군소 알의 지방 성분으로 구토ㆍ설사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장과 알에 든 아플리시아닌은 항균(抗菌)ㆍ항(抗)바이러스제 등 약물로도 연구되고 있다.
다른 항균 약물들처럼 사람의 간세포에 염증을 일으켜 독성 간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플리시아닌의 독성은 가열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군소를 삶아 먹어도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래서다. 피지 섬에서 기름에 튀긴 원뿔군소의 내장을 먹은 뒤 구토ㆍ설사ㆍ떨림 등이 나타난 사례도 있다.
서 교수팀은 “(4명의 환자 모두 완치돼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군소의 알ㆍ내장을 먹은 뒤 구토ㆍ복통ㆍ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이른 시기에 방문하게 됐고 이에 따라 조기 치료를 받은 덕분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군소에 의한 독성 간염은 5∼7월에 집중됐다. 이 시기가 군소의 산란기(産卵期)여서 알을 함께 섭취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서 교수팀은 분석했다.
군소는 일반적으로 물에 담가 보라색 액을 완전히 제거한 후 삶아서 먹는다. 이처럼 군소의 알과 내장을 완전히 제거하고 먹는 것은 식품안전상 전혀 문제가 없다. 시중에선 내장이 제거된 군소를 삶아 판매한다.
군소를 파는 상인들이 독성 물질의 존재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군소를 잘 접하지 못하는 일반 시민ㆍ관광객은 독성에 대한 정보 없이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서 교수팀은 우려했다.
한편 군소는 긴 달걀 모양에 길이는 40㎝ 정도다. 머리에 촉각ㆍ후각을 느낄 수 있는 더듬이가 있다. 흑갈색 바탕에 다양한 크기의 백색 얼룩무늬를 갖고 있다.
3∼7월께 얕은 바다의 해조류나 바위틈에 알을 낳는다. 외부 자극을 받으면 보라색 액을 내뿜는 것이 특징이다.
헬스팀 임한희 기자 newyork29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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