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술시장 룰 수용 ‘위작천국’ 오명 벗어야
우리 미술인들도 통일 대비 소통 확대를 북한미술 소개 기사가 나가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었다. 왜 그토록 작품량이 많고 같은 작가의 비슷한 그림이 많이 쏟아져 나오느냐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가짜 그림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예로부터 어느 사회나 돈이 되는 그림은 위작이 만들어졌고 유통되어 왔다. 북한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인기 있는 북한 그림은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위작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컬렉터들이 북한미술품 수집에 눈길을 돌리면서 이 같은 양상은 더욱 은밀해지고 있다.
많은 경우 북한미술에 대한 위작 논란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북한에서는 작품을 모사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장려하는 쪽이다. 인민들에게 보다 많은 미술품을 보급한다는 명분이 앞서고 있다. 좋은 그림은 모사를 해서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만드는 것이 미덕이기 때문이다. 우리식 기준으로 봐서는 분명한 위작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한 화가가 유명 작가의 말 탄 그림을 봤는데 모델과 말을 구할 수 없다면 연습 삼아 모사를 하게 된다. 모사 작품을 알게 모르게 판매를 해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 밖으로 유통되면서 사정은 달라지고 있다. 북한미술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 실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술시장에서 북한미술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작가가 똑같은 작품을 여러 개 내놓는 사례도 허다하다. 자기 복제라 할 수 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버젓이 자기 이름으로 사인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떤 것이 진짜 작품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예술작품에서 원작의 존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 부재라 하겠다. 이른바 ‘모사 도미노 현상’이 자칫 북한미술 전체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북한미술계는 이제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미술품이라도 ‘인민 보급’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노동자들이 오리지널 작품을 구할 수 없다면 모사 작품으로라도 예술을 즐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사라면 누구누구 모사라고 쓰는 게 좋다.
북한도 국보급 작품이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모사했을 땐 누구누구의 모사라고 쓰도록 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외국 인사들에게 선물을 줄 때 취하는 방식이다. 유명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똑같이 하나 더 그렸을 때도 모사라고 쓰고 있다. 일종의 판화 에디션 개념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근래 들어 해외 미술인들의 평양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북한의 최고 미술 명문 평양미술대학은 단골 견학 코스다. 많은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전시실은 오픈하는데 내부 학교시설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체제 선전의 꼼수로 쉽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 우리도 손님들이 오게 되면 누추하거나 부족한 부분은 체면상 가리지 않았는가.
미술에서도 남북한의 인식차는 여전히 크다. 이젠 체제 선전의 꼼수로 몰기보다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봐줄 때 남북의 미술 소통은 시작될 것이다. 조만간 미국에서 ‘사실주의’를 주제로 남북한과 중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북한 현대미술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우리 사회도 이젠 북한미술을 동 시대 한반도의 한 지역에서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발전해 온 미술사조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북한미술이 통일시대엔 우리 민족 미술의 중요한 자산이 되도록 지금부터 연구하고 소통해야 한다. 북한미술품 컬렉션은 그 출발점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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