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갤러리두인(대표 김인자)의 연례기획전 ‘뜻으로 본 한국미술’은 대표적 사례다. 미술평론가 김종길(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이 외부기획자로 발탁돼 마련한 전시다. ‘뜻으로 본 한국미술’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차용했다. 함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 한국역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면, ‘뜻으로 본 한국미술’은 한국미술에 나타난 ‘한국성’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함이다.
‘뜻으로 본 한국미술’을 기획한 김종길 평론가. |
‘뜻으로 본 한국미술’의 첫 작가는 이재삼이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속 달빛(心中月)’을 그려왔다. 달빛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그가 주로 선택하는 것은 소나무, 대나무, 매화, 폭포 등이다.
뜻으로 본 한국미술의 첫 주제는 ‘달빛 아리랑’이다. 기획자는 “아시아의 민족들은 달빛에 기대어 살아왔다. 달력(月曆)은 삶의 체계를 구축했고 생철학의 근원이 되었다. 아리랑은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사람들의 밀물과 썰물이었다. 우리는 이재삼의 작품을 통해 그 세계 너머의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기획전 작가로 선정된 이재삼 작가의 ‘달빛’. 목탄으로 그린 소나무가 있는 달빛 풍경이다. |
그럼에도 전시현장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한 작품의 속뜻과 상관없이 전시 테마에 묶어서 다양성이라는 맥락에 포섭시켜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뜻으로 본 한국미술’ 기획전이 오롯이 한 작가의 작품에 집중하는 이유다. 작품도 한 작가의 대표작품 예닐곱 점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드로잉, 사진자료와 리플릿, 도록 등의 아카이브, 그리고 작품의 속뜻을 맵핑으로 보여주는 ‘사유지도’도 전시장에 내걸렸다. 이렇듯 작품을 심도 있게 읽어 보아야만 미술이 가진 상징과 은유, 시대와 현실의 미학을 깊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첫 전시기획전에 발탁된 이재삼 작가는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저는 목탄을 ‘검묵’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드로잉 재료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먹이죠. 사물마다 고유한 형상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 그 고유한 형상의 바깥(너머)이 만들어 내는 빈 공간입니다. 그 어둠, 그 여백,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경이 있습니다. 일종의 ‘초월’일 것입니다. 그림엔 보이지 않지만 달빛이 있어요. 숲은 신령한 존재로 드러나는데, 달의 빛, 달의 소리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