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사망자만 144명에 달했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겪으면서 환경보건학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걱정하는 게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스프레이 제품의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해물질이 곧바로 폐로 들어가면 위로 갈 때보다 치명적 독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시중에서 팔리는 스프레이 제품 100개를 수거해 검사한 결과 31종이 위험등급 판정을 받았다. 사용 시 주의사항 등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제품이 많았다. 이중에는 살충제뿐만 아니라 화장품도 7개나 포함돼 있었다.
화장품을 피부에 바르면 그 성분이 모두 몸으로 흡수되지는 않는다. 피부 표면에서 증발하기도 하고, 피부장벽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피부장벽을 뚫고 몸속으로 들어가더라도 그 양은 매우 적고, 판매가 허가된 화장품에 치명적 독성물질이 들어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인체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스프레이형은 얘기가 달라진다. 자외선 차단제나 미스트가 대표적이다. 뿌릴 때 숨을 참거나 입과 코를 막지 않는 한 성분이 얼마든지 폐로 들어갈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가 폐로 들어가 폐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어린이들은 스프레이형 자외선 차단제를 직접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보호자가 손에 뿌린 후 아이 몸에 발라주는 게 안전하다.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장 |
여름철 자동차 에어컨에 뿌리는 스프레이형 곰팡이 제거제도 급성 흡입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거나 마스크를 착용한 채 뿌리는 게 안전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생활용품 성분의 피부독성과 음용독성은 평가하고 있지만 흡입독성은 하지 않고 있다. 비용이 들고 본래의 사용형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스프레이 제품은 사용 중 성분이 얼마든지 폐로 들어갈 수 있으므로 흡입독성 평가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프레이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각자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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